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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르샤
Homepage    http://lechat.pe.kr
제 목    [국어샘, 엄마]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아시아네트워크

                                                                                2008년 2월 22일



어제 대학 친구 모임에 갔다. 같은 과를 나와 대부분 국어교사를 하는 친구들. 까르르 웃는 와중에 몇 번이나 ‘야, 우리가 20년을 만나왔잖니...’라는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여러 화제를 거쳐 아이들 키우는 문제가 나왔다. 사춘기 현상에서부터 이 나라에서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할 것인가까지 각종 사례와 처방이 난무했다. 엄친아, 엄친딸의 사례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이 땅의 학부모들도 불안하게 한다. 그 빛나는 사례가 실은 증폭된 것임을 알면서도, 가보지 않은 길에 선 사람들은 자식에게 희망을 품기 마련인 법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경쟁사회에서 우위에 서기를 바라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게 된다.

나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성적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운운하다가도 별 수 없이 성적을 놓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제 책상에서 수학 문제집만 들여다보는 아이를 보면서 이런저런 책을 읽어라 해놓고는, 또 그런 책들을 본다고 며칠을 보내는 딸에게 수학은 언제 할 거냐, 앞뒤 안 맞는 말을 한다. 이럴진대 차라리 일관된 모습으로 성적을 강조하는 ‘인생플래너’형 엄마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좀더 공부의 중요성을 미리부터 알려줬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몰라, 난 수학 선행이 너무 안 되어서 문제야 등의 얘기를 들을 때면 그런 생각이 드니까. 관대한 척 아이들을 방기해놓은 것은 아닌가, 결국 아이들의 문제는 엄마 하기 나름이 아닌가 하는, 강남엄마 담론에 불안해하는 나를 보게 된다. 그러나 한참 문제를 들여다보면 또 그게 아니긴 하지만....

이 책은 화요일 저녁 시간에 잠실 교보에 갔다가 사온 책이다. 두 아이 저녁 시간에 시작하는 학원 보내고 나서 혼자 저녁 시간을 쓰는 날이 많아졌다. 지난 화요일도 그런 날, 서점에서 나 혼자 세 시간 가까이를 보냈다. 아이들이랑 갔을 때와는 다르게, 천천히 마냥 책방에 있었던 게 언제였나 싶다. 그렇게 천천히 신간을 보다가 사온 책이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였다.

‘엄마의 전쟁 일기 33일’이라는 부제처럼, 69년생 엄마가 두 아이와 함께 2006년 이스라엘 침공으로 인한 레바논 전쟁 때 겪은 이야기이다. 자식의 대학 입학이 부모의 인생 목표가 되어버린 한국의 엄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은 거리감을 확보해주는 책이었다. 내가 몰두하고 있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 고개를 들어 세계 지도를 들여다보면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웅다웅 사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 책에는 매일 6시간씩 피난민을 위한 학교에서 일하는 리디아와 그녀의 딸 마리아가 나온다. 베이루트에서 피난 온 캠프에서, 엄마 옆에서 어린 아이들을 돌본다고 매일 미술용품과 공예 재료로 무장하고 학교에 가는 마리아.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시간에도 아이들을 문가에 나와 리디아를 기다린다. 이런 힘을 지닌 딸을 엄마 리디아는 자랑스러워한다. ‘십대 친구들은 전쟁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마리아는 모든 시간을 남을 돕는 데 쏟겠대. 그래서 저축한 돈을 피난민들을 위한 물품을 사는 데 모두 내놓았어. 엄마로서 내 아이가 이기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걸 보는 것이 참 좋아’라고 말이다. 딸을 그렇게 키울 수 있는 힘은 엄마 리디아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시 내가 사는 모습으로 돌아온다. 우리집 두 아이가 이렇게 컸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내가 그렇게 사는 것, 이것이 이 책에서 확인한 진실이다.

이 책을 쓴 이는 1969년 베이루트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줄곧 레바논 내전의 참상을 보며 성장한 림 하다드다.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는 전쟁이 벌어지자, 남편인 신문기자 닉은 전쟁의 한가운데인 레바논 남부로 간다. 남편이 그렇게 가면 혼자 두 아이를 지키며 홀로 지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전쟁의 와중에서 남편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림은 남편을 남부로 보낸다. 시시각각 들어오는 뉴스를 보면서 두려움에 떨고 미국의 만행에 분노를 하며 지냈던 33일, 림은 그 시간을 기록한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매일 누가 어떤 상황에서 죽었고, 이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관해서 꼼꼼히 적은 책이다. 종전 협상이 발표된 날 레바논 남부에 다시 가공할 폭격이 이루어졌고, 헤즈볼라를 색출하기 위한 폭격이라는 명분이 얼마나 부질없는 거짓말이었는가를 실제 그 전쟁을 통과한 사람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증거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 33일간의 기록을 보면 림은 약하기 그지없는 보통 인간일 뿐이다. 명분과 의미와는 상관없이 사랑하는 남편이 가족한테 돌아오기를 바라는 약한 엄마이자, 그러나 아이에게만큼은 자기가 겪었던 전쟁의 그늘을 보여주고 싶지 않는 모성이 가득한 엄마.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속내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책을 읽으며, 난 엄마로서의 내가 몰두하는 질문들이 참으로 사소한 문제구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좁은 울타리에서 그게 전부인 것 같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 그런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또 하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행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에 관한 생생한 증거이기도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체! 이 책을 읽고 난 아침, 한겨레신문의 김연수 칼럼은 바로 내가 느낀 지점을 얘기하고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바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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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에게 가장 끔찍한 일
                                                 김연수 (소설가)

어릴 때부터 뉴욕은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뉴욕제과점’에 태어난 까닭에 엉금엉금 기어다닐 때부터 나는 자유의 여신상이 인쇄된 포장지를 더듬거리며 자랐기 때문이다.(빵집에 대한 기사를 다룬 1월31일치를 참고해주세요.) 포장지는 서울 을지로에서 인쇄돼 금호고속 편으로 김천까지 배달됐다. 붉은 기운이 도는 갈색 1도 인쇄였다. 그렇다면 거기에 그려진 자유의 여신상은 또 얼마나 조잡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속 뉴욕마저 조잡해지는 건 아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도 나는 뉴욕에 가보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내 마음의 뉴욕도 그 포장지만큼이나 퇴색했다. 바그다드, 레바논, 카불 같은 도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안 뒤부터 뉴욕을 동경한다는 건 죄악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뉴욕에 가서 자유의 여신상을 실제로 본다고 해도 그게 어릴 적 내가 봤던 조악한 포장지 속의 여신보다 아름다울 것 같진 않다.

그렇지만 동경의 불빛은 쉽게 꺼지지는 않는다. 집 앞에서 빗자루로 아이들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심심할라치면 곗돈을 떼먹고 달아나는 이웃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친구를 잃고,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랐다. 내가 속한 세계가 다른 어떤 세계로 바뀔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반쯤은 맹신하며, 반쯤은 회의했다. 전날의 세계는 오늘의 세계보다 좀더 좋았거나 훨씬 더 나빴다. 세계는 좀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실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진실을 말하자.

이 시대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동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여전히 뉴욕을 동경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뉴욕은 수전 손택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수전 손택은 어떤 글에서 작가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진실을 추구할 때 가능한 가장 끔찍한 일은, 진실을 알게 되는 일이다.” 모든 작가들은 이 문구를 책상머리에 붙여놓아야만 한다고 그이는 제안했다. 나는 자유의 여신상에서 진짜 불꽃이 튀는 건 바로 이런 문구를 실천할 때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9·11 직후에 실제로 수전 손택이 애국주의를 선동하는 미국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글을 쓸 때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는 진실이라면, 그건 덮어두고 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용주의적이고 정치적인 사람들이다. 이건 명쾌하게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다. 하지만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진실은 (그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마저) 버거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능력과 상관없이 진실은 거기 존재한다. 진실을 위해서라면 나는 지금의 나보다 좀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내 마음에 여전히 남은 뉴욕에 대한 동경은 바로 이런 것이다. 윤리적이어야만 한다는 건,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훌륭해져야만 한다는 뜻이다. 오히려 비실용적인 의미에서.

며칠 전에 수전 손택이 죽고 난 뒤, 아들인 데이비드 리프가 쓴 글을 읽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인용됐다. “스무 해 전부터 죽기 전에 꼭 하겠다고 다짐해 온 일. 마테호른 등정. 하프시코드 연주법 배우기. 중국어 공부.” 또 이런 글도 인용돼 있다. “우리는 써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한번 보라. 로켓, 베니스식 교회, 데이비드 보위, 디드로, 늑맘, 빅맥 햄버거, 선글라스, 오르가슴.” 이제 이런 것들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는 때로 우리는 세상 전부와 맞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전부와 맞서본 사람은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충분하지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수전 손택은 2004년에 죽었고, 그이의 마지막 책은 작년 12월에 출간됐다.
(출처. 2008년 2월 21일 한겨레신문 esc 지면, 김연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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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림은 두 아이에게 편지를 보내며 글을 맺는다. 사랑하는 야스민과 알렉산더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그 지옥 같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쓸 수 있다니 림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혹은 아랍민쪽으로 나뉘어 반목했던 우리 세대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293쪽

알고 있니?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처럼 너희들도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거야. 왜냐면 너희가 절반은 아랍인이기 때문이지. 좀더 자라면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커다란 미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그 미움들이 계속 깊어져서, 주변이 온통 원한으로 가득하다는 것도 느끼게 되겠지. 이스라엘이 거듭거듭 우리를 공격한 것에 대한 원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괴롭힌 데 대한 증오, 또 이스라엘이 그런 짓을 하도록 승인하고 돈을 대준 미국에게 분노도 생기겠지. 그런 감정은 이해할 만하고, 충분한 근거도 있단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잔인한 짓들은 쉽게 잊혀질 수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내 소중한 아이들아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고 믿자. 용기를 내자.
그 누구도 증오해선 안 된다.

너희 증조할머니는 자존심이강하고 꿋꿋한 분이셨어. 그분은 이스라엘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셨지. 이스라엘은 집을 빼앗고 친구들을 데려갔고 조국도 빼앗었어. 그렇지만 할머니가 팔레스타인에서 살 때, 할머니의 가장 좋은 친구들은 유대인이었고, 베이루트로 온 뒤에도 친한 유대인 친구가 많았어. 돌아가시기 전에 잠깐 살았던 영국에도 유대인 친구가 있었지.

잊지 말아라. 유대인도 아랍인도 서로를 증오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라.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레바논 저항운동이 옳다는 것과 그것이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믿어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라를 세우도록 돕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이스라엘의 마땅한 의무임을 믿어라.

무엇보다, 아랍인과 유대인이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레바논과 이스라엘도 언젠가는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정의롭고 공정한 평화 말이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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