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사람과 베트남 라오스] 02. 떠나기 전날
● 2018년 1월 9일 (화) - 떠나기 전날 풍경과 마음
여행의 백미가 벌써 찾아왔다. 여행은 떠나기 전날이 가장 두근두근하다. 신부장회의가 오전에 있어서 학교에 가야했다. 보름 동안 연락 두절이 될 것이니, 학교에서 이만한 일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벌써 작년이 되었구나, 회의에서는 2017 학교평가보고서를 일람하고, 2018 예산을 확인했다. 밥을 먹고는 신축교사 먼지 구뎅이를 한바퀴 돌았다. 그래도 좋다.
다이소에 들렀다. ‘여행’ 코너에서 천 원짜리 이천 원짜리 하는 약통과, 작디작은 지퍼백과, 빨래줄과, 파우치, 네임택을 샀다. 트렁크를 꺼내자 보리랑 라울이가 눈이 둥그래졌다. 엄마, 저희 놔두고 또 어디 가시죠? 녀석들 사료와 화장실을 수혁이가 챙기겠다고 나선 것은 다행이다. 보고 싶으면 어쩌지? 언제부터인지 여행을 떠나면 우리집 사람들보다 이 녀석들이 더 눈에 밟힌다.
밤이다. 둘이, 저녁은 냉동실에 있는 볶음밥으로 때우면서 쿠바에서 사온 럼주를 한 잔씩 했다. 장도를 축하하는 전야제의 의미를 담았다. 한사람이 여행자보험을 들고, 난 일정표를 한 장 완성했다. 트리플(여행일정)이나 부킹닷컴(숙소 예약), 키위닷컴(비행기 예약) 등의 앱을 한데 모아 ‘여행’이라고 핸드폰에 폴더로 정리했는데, 수민이가 일정을 놓고 가란다. 한 장에 정리해서 출력본 하나는 주고, 우리도 하나씩 가졌다. 한사람이 얇은 노트를 찾아달라고 했다. 난 맥북을 가져간다니, 한사람은 얇은 공책에 몇 자 쓰겠단다. 각자의 방식대로 이번 여행을 기록해봐야겠다. 일단 구글지도에서 숙소와 대표적인 명소에 핀을 찔러놓았다. 가고 싶은 장소라니, 꼭 가봐야겠다. 설레임도 꽂았다.
아직까지 안한 건 유심 칩 구입과 현지 화폐로 환전하는 것이다. 유심 구입은 처음이라, 밤 12시 가까이에 도착해서 환전하는 것도 처음이라, 걱정이다. 걱정 말라는 글이 블로그에 널렸다. 새벽에 도착하더라도 공항은 깨어있다니, 가서 하기로 한다.
12시가 넘었는데 한사람이 아직도 공부방에서 안 넘어왔다. 기다리다 여행영어 앱을 켰다. 필수회화 :) 중1 수준의 생활영어부터 죽죽 넘겨가며 읽는데, 다시 설레임이 살살 올라온다. 베트남어 기초회화도 깔았는데, 베트남어는 발음부터 고유명사까지 영 입에 안 붙는다. 언어는 별로 걱정이 안 된다. 잘해서가 아니라, 몸짓언어 표정언어 등의 반언어적 의사소통의 힘을 믿으니까.
가방을 싸면서 고민이 되었던 건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인가였다. 가이드북은 각자 맡은 대로 하나씩 챙겼지만, 발코니에 앉아서 다리 쭉 뻗고 읽을 책이 필요할 것이다. 서구인들이 세익스피어 휴가라고 하며 책을 몇 권씩 챙겨 휴가를 보낸다고 해서 부러워했다. 몇 권은 좀 과하고, 늘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읽히는데 문장이 말을 거는 그런 책을 찾아야 한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이 그런 책이 될 것이다. 한사람과 같이 가는데, ‘멀고도 가까운’이라니, 제목만으로도 이미 탁월한 선택이다. 운명이라고 생각하는데, 복선이면 어쩌지? 이 책은 이럴 때 쓰려고 아껴둔 책이었다. ‘살구’ ‘거울’ 부분은 죽죽 연필로 줄이 그어져 있다. 생각난다. 문장 하나 하나가 너무 좋아서, 두 챕터를 읽고는 천천히 읽고 싶어서 덮은 책이었다. 일상에 밀려 휙휙 읽기에는 아까웠다. 이제 이 책과 내가 만나기에 적절한 시공이 되었다. 일단 설레는 마음을 다독이며,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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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