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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르샤
Homepage    http://lechat.pe.kr
제 목    [자료 : 오래전읽은책] 만화에 관한 책 두 권

만화와 함께 , 아이들과 함께,  가자

    『만화를 위한 책』, 박인하, 교보문고, 1997
    『호호에서 아하까지』, 만화평론가협회, 교보문고, 1998


‘만화’를 놓고 자유연상을 한다면, 난 어떤 단어들을 먼저 생각할까? 우리 아이들과 같이 한다면 양과 질의 면에서 많이 뒤쳐질까? 한번 시간을 잡고 아이들과 해볼 일이다.

작년 겨울방학 동안 새롭게 ‘만화’에 대해 진도를 나갔다. 진도 운운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학습 의지가 아니었으면 위의 책들을 읽었을지 의문이다. 읽어야 하고, 읽고 싶은 책들이 사방에 넘쳐나는 세상에 선뜻 만화에까지(‘만화에까지’?) 손길이 미치지는 않았겠지. 그러나 굳이 시간을 내어 읽은 까닭이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서 올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이다. 물론 그간에도 숨은 쉬고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권할 적마다 부딪치는 것이 ‘만화’였다. ‘선생님, 만화 보면 안되요?’ ‘선생님, 일본 만화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예요. 그림도 예쁘고, 얼마나 재밌는데...’ 나도 ‘내 인생의 일본 만화’인 캔디의 열독자였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재미와 감동과 매혹의 정도를 어림잡지 못하는 입장에서 뭐라 해줄 말이 없었던 게 그간의 사정이었다. 아, 학습이라도 좋으니, 맘 잡고 읽자하는 생각에서 교보에 나갔고, 위의 두 권을 사서 단숨에 읽었다. 무척 재미있었다.

그러나 책의 내용에 앞서 ‘만화’에 관해 두세 가지 사건(?)이 생각난다. 작년엔가 주부동호회에서 ‘세일러문’을 보는 아이들을 걱정하다가 서울YWCA와 연관해서 서명을 한 적이 있었다. 내 딸아이도 또래와 별다르지 않아, 그 여러 명의 세일러 시리즈들을 쫘악 외어가며, 변신할 때 휘두르는 요술봉을 사달래기도 하고, 세일러문 코디 스티커를 가지고 하루 종일을 놀았다. 도대체 어떤 만화이길래 하는 마음에, 두 아이 앉혀 놓고 함께 본 적이 있는데, 어쩜... 몸에 달라붙는 변신복하며, 유치찬란하게 전개하는 내용하며 내 아이가 빠질 요소가 어디에 있는지 황당하기만 했었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던 터라, 별 생각 없이 선정성에다 밑줄을 좍 그어 주부동의 서명란에 내 이름 석자를 썼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런 막가파 아줌마들 때문에 만화 죽이기가 자행된다며 플라자난에 연일 도배되는 열혈청년들의 ‘아줌마론’을 보면서 어찌나 얼굴이 홧홧하던지. 막말로 감정을 배설하는, 그러나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젊은 아이들의 논리 앞에서, 세일러문 전편의 내용을 보고서 서명한 것이 아닌 나로서는 뭐라고 내세울 나의 논리가 없었다. 그저 감정만 상하다가 말아버린 그 일. 이후 만화에 대해서는 함부로 내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위의 사건은 만화에 대해 재고할 것을 요구하였고, 거친 수준이지만 폭력이나 선정성과 같은 딱지를 붙여 규제 일변도로 나갈 일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좋은 만화’라 일컫는 ‘나무를 심는 사람’이나 ‘반딧불의 묘지’와 같은 만화를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얘기하게 하는 등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만화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져다 주었다.  

만화와 나의 우정어린 시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즐거운 만화, 생각해보니 자잘하게 꽤 있다. 우리 아이들과 내가 숭배하는 컬트만화영화 김수정님의 ‘얼음별 대모험’, 드라마를 보고서 ‘일곱 개의 숟가락’을 찾아 읽던 일, 얼마전 샀던 ‘반쪽이의 딸, 학교에 가다’는 내 딸이 가져가서 아예 제 책꽂이에 꽂아 놓고 아침 저녁으로 보고 있다. 만화계의 스타 박재동님의 ‘만화, 내사랑’과 한겨레 그림판을 보면서, 요즘엔 ‘광수생각’을 통해서 만화를 느낀다. 동료 선생님이 발견해 주신 ‘간판스타’의 이희재님은 작년엔가 우리교육을 통해서 다시 만나 반가웠고, 만화페스티벌 하면 반드시 가봤고, 말많은 디즈니 만화들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고 또 보고’ 한다. 얼마전 ‘개미’와 ‘이집트왕자’를 보고나서의 감동은 어쩌고.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교직 초기의 학급 문고에 갖춰 놓던 일, 중학교였나 이모네집 서가에 꽂혀 있던 ‘고인돌’을 읽었는데, 성적인 코드 앞에서 얼마나 묘했었는가. 플란더스의 개,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를 그린 감독 이름은 몰랐지만(오늘날 미야자끼 하야오는 얼마나 유명한가) 총명하면서도 따뜻하고 다정한 선처리를 한 만화는 내 마음 속에 환하게 남아 있다. 여름방학, 같은 감독의 작품인 빨간 머리앤을 열심히 봤다. 아무튼 나의 일상 속에 만화가 자연스럽게 함께 한 기억들은 만화가 천박하다거나 찰나적 인식만을 제공한다는 이성적 인식에 앞선 감성의 차원의 친근함이었다.

문제는, 폭력과 외설적인 만화 앞에서 우리 아이들은 과연 무기력한 것인지 내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야  만화를 책읽기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갖다 놀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른들의 분홍빛, 노란빛, 성인문화가 문제이며, 한갖 '짱‘이라는 만화 때문에 아이들이 일진회를 결성한 것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만화에만 빠져서 한참 책을 읽어야 할 시기에 진지한 책을 안 읽으면 어쩌나, 만화의 전파력과 친화력이 갖는 반대급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등등의 생각이 여전히 남는다. 이 점에 관해 『만화를 위한 책』에서 박인하씨는 비분강개 침 튀겨가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만화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인식, 만화는 포르노그라피에 불과하다는 편견, 만화를 보면 책 읽는 습관을 기르지 못한다는 몰이해 등은 만화에 화인(火印)으로 찍힌 숱한 주홍글씨들이다....흔히 만화는 예술의 치부이자 문화의 서자(庶子)쯤으로 인식되어졌다. 어렸을 적 만화를 즐겨 보던 사람들도 정규교육을 통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소양이 길러질 때쯤이면 만화는 되도록 멀리해야 될 것이라는 관념으로 무장하게 된다....모든 청소년 문제는 만화를 비롯한 대중매체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졌다....최근 들어 만화에 대해 우호적으로 변했다지만 아직도 만화의 상업적 가능성에 대해 그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이렇게 관습적인 이중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만화에 대해 반성적으로 되짚어보는 것만이 만화에 해 올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는 길이다. 또 그것은 어렸을 적부터 만화를 읽으며 감동 받고, 사회와 인간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게되었던 구체적 경험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길이기도 하다.... 좀더 솔직하게, “당신은 만화를 왜 보는가?”라는 질문에 답해보자....만화에 달라붙는 불량과 저질이라는 이미지, 예술을 고급과 저급 혹은 고급과 통속이라는 이분법으로 사고하는 것은 자기 예술 기호에 대한 매우 이기적 발상에 근거한다. 다른 사람과 구분되기를 바라는 문화적 우월감, 나만이 즐길 수 있다는 선민의식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많은 부분에서 동감 내지 공감했다. 『호호에서 아하까지』에선 챙겨 읽어야 할 우리 작가의 작품명을 메모할 수 있었고, 우리 만화사의 지형을 그려볼 수 있었다. 이젠 동네 만화방에서 빌려 읽을 일만 남았다. 우리 아이들이 많이 보는 순정만화부터 시작해서, 문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까지. 이렇게 읽고 나야 우리 아이들하고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와중에서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읽어보고 나서 하는 이야기니까 진정성도 담아서. 이희재님의 ‘민들레’와 같은 좋은 만화는 우수한 단편 소설처럼 함께 읽고 얘기하고, 좋지 않은 영향이 우려되는 만화에 대해서도 함께 얘기하며 비평 능력을 키워주는 것. 이것이 교사로서 아이들과 동일한 공기를 호흡하며, 아이들과 함께 가며 해줄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두 권의 책, 구체적으로는 이 책의 저자들에게 고마움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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