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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르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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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국어샘] 호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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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김리리 외, 김경연 엮음, 창작과비평사)
2008년 2월 10일
꼼꼼하게 읽을 기회가 생겨 일전에 휘리릭 읽은 책을 한 편 한 편 다시 읽고 몇 자 적은 글이다. 1차 자료.
「남친 만들기」, 김리리
늘 내 곁에서 영원히 단짝일 것 같은 친구 희영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나는 하루 아침에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갑자기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는 내게 빚어진 상황, 같은 반 남학생인 상욱이가 더듬거리며 자꾸 시선을 보내는 것을 나는 그만 날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만다. 오해의 끝은 굴욕과 무참과 황당으로 이어지고. 그러나 희영이가 남친과 깨졌다고 돌아오고, 우린 다시 단짝이 되어 재잘거리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청소년이면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법한 상황을 잘 담아낸 단편이다. 공감지수가 높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의 콩닥거림과 소외감, 호기심을 일상에서 포착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김옥의 『청소녀백과사전』에 실린 단편 「착한 아이」는 아버지가 준 상처로 인해 삐뚜름해 보이는 아이 현주가 주인공이다. 현주의 내면에 자리 잡기 시작한 지홍이를 향한 짝사랑의 감정도 「남친 만들기」의 나처럼 깨지고 만다. 희영이와 까르르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나에 비해서, 「착한 아이」의 현주가 ‘그래도 난 착하게 자랄거야’라 외우는 주문이 간절해서 좀더 마음이 쓰인다는 것이 다를까.
「첫날밤 이야기」, 박정애
‘첫날밤 이야기 해주세요’ 조르는데 묻어나는 호기심과 키득거림이 박정애의 단편에서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화자의 외할머니의 외할머니, 그러니까 열두 살에 시집을 가서 박실이네가 되어야했던 앵두나무집 작은 아기의 당차고 야무진 댓거리에서 독립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호통새, 꾸중새의 시집살이를 살면서 기미년 만세 사건의 와중에 작은아기가 박서방을 사내로 받아들였던 첫날밤 이야기,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작은아기처럼 입속에 새콤달콤한 침이 고이고 칡덩굴같은 것이 조여와서 가슴이 홧홧할 때 첫날밤을 치루고, 그 첫날밤으로 인해 우리가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첫날밤의 구체화인 것이며, 나를 있게 한 역사적인 사건으로서의 첫날밤임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엄마와 아빠도 그랬겠지? 생각이 이어지는 단편이다.
「서랍 속의 아이」, 신여랑
이 작품집 속에서 난 이 단편이 제일 인상 깊었다. 상담 선생님에게 ‘나 사실은 거기에 가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이야기를 듣고, 상담선생인 나는 오래전 묵은 서랍을 열어 그 아이를 떠올린다. 열두 살, 텔레비전을 본다고 들어간 방에서 겪었던 병태와의 일로 인해 삶의 어둑한 면을 지니고 살아야했던 어린시절의 내가 있다. 엄마가 난리를 치며 자기를 격리시켰음에도 덮어지지 않고 자꾸 생각났던 까닭은 ‘내가 사실은 제 발로 거기에 갔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병태와 그 방만 생각하면 침이 마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 방에서의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고 더러운 일이라고 믿었기에, 열두 살인 나는 두고두고 혼란에 빠졌더랬다. 내게 찾아온 아이와의 상담을 통해 오래전 묵은 서랍 속 아이와 나는 이제야 화해를 한다. ‘너는 더럽지 않아. 너도 어쩌지 못하고 혼란스러웠을 뿐이야. 사람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서랍이 있는데, 그때 너는 우연히 그 서랍을 열었던 것뿐이야’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낡은 서랍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 서랍 속 아이들을 도닥거리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단편이 편하지는 않다. 나도 맨 아랫칸 잠긴 문을 열고 스윽 서랍을 열어본다.
..... (왜 성적 욕망을 일정 정도 장애아의 일그러짐으로 표현하는가?, 문방구집 곱추누나가 나오는 소설이 뭐였지?)
「쌩 레미에서, 희수」, 이금이
작가가 창조해낸 멋진 캐릭터 희수를 생각하면 참 기분이 좋다. 고흐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여행을 가자고 했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남겨진 아이. 희수는 주유소 알바를 하며 옥탑방에서 산다.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림이 좋아서 미술학원에 다닌다. 그런 희수에게 주민등록증이 나온다는 것은 여권을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엄마와 가려고 했던 고흐를 따라가는 여행, 그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단기적인 삶의 목표이다. 한켠에 간직한 슬픔이 자양분이 되어 이 아이를 단단하고 야무지게 키우는 것일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 안쓰럽고 기특하다.
그리고 처음에는 희수를 유학을 다녀온 부잣집 아이로 알고 호기심의 차원에서 좋아하기 시작한 선우가 있다. 인생 플래너인 엄마의 망 안에서 적당히 시달리고 적응하는 미대 입시생 선우. 선우가 희수를 좋아하면서 넓고 깊어지는 과정이 이 소설의 한 축이기도 하다. 강남에서 제일 큰 미술학원을 차리는게 인생 대책이라고 생각했는데 희수는 그림은 꼭 대학에 가기 위해 그리는 것이 아니란다. 선우의 열여덟은 대학을 위해 저당 잡혀 있는데, 희수처럼 여행을 마음대로 계획할 수 있는 열여덟은 처음 본 다.
연락이 끊긴 희수를 찾아가긴 하지만 사정만 들었을 뿐 정작 선우는 희수를 대면하지 못하고 골목에서 몸을 숨긴다. 겉으로는 센척하는 희수도 혼자 여행하는 것에 겁을 조금 먹기도 한다. 이후 선우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여전히 입시생의 삶을 산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엄마의 차를 더 이상 타지 않는다는 것. 학원으로 온 편지에서 희수는 그곳의 가슴 뛰는 삶을 전한다. 주 뗌므라고 먼저 말을 했던 희수답게 선우가 예쁘다고 한 검은 머리를 하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이 아이들의 고운 사랑이 참 예뻤다.
이 단편은 대체로 대학입시에 저당 잡힌 삶을 사는 청소년들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선우가 희수를 만나면서 넓고 깊어졌던 것처럼, <쌩 레미에서, 희수>를 읽는 청소년들도 조금씩 조금씩 흔들리고 달라졌으면 싶다. 이금이 작가의 책은 내게 늘 성장소설이다.
「키스 미 달링」, 이용포
『호기심』을 딸아이가 읽으면서 유치하다고 야유를 보냈던 소설이다. 자기는 얼마나 고귀한데 그러냐, 키스에 대한 남학생의 판타지가 잘 그려져 있구만.... 이라고 했지만, 내가 읽기에도 만화적인 전개와 상투적인 문장이 거슬리는 단편이다. 별로.
「공주, 담장을 넘다」, 이혜경
중학교 2학년 국어 교육과정에 소설 쓰기가 있다. 아이들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 만들기의 열망에 새삼 놀라면서 가르치는 단원이다. 이혜경의 단편 「공주, 담장을 넘다」에 들어있는 소설은 실제 중학교 학생이 쓴 소설을 손 본 것이란다. 내가 이 단원을 가르쳤을 때도 지수처럼 아이들은 모두 이야기꾼이었다.
지수의 소설은 정민이의 가출을 따라가면서 담장을 나온 공주가 돌아가지 않고 여왕이 되어 왕국을 세우는 이야기로 끝맺는다. 아이들판 흑설공주 이야기인 셈이다. 이야기의 뼈대를 바꿀 만치 아이들에게 정민이가 남자를 사귀다가 가출했다는 소식은 놀라운 것이며, 어른 위주로 돌아가는 판도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신나는 일이다.
정민이는 전형적인 공부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는 모범생이었다. 매니저형 엄마의 관리를 받으며 착실하게 공부에만 올인하는 모범생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가, 그로 인해 성적이 떨어지고 한바탕 소통이 일어난다는 설정은 남학생이 피씨방에 갔다가 날라리에게 걸려 돈을 뺏기는 것만큼이나 전형적인 사건 전개이다. 그만큼 아이들의 억압된 열망이 담겨있는 소재인 것이다. 혈기방장한 나이에 모든 것을 유보하고 스케쥴대로 공부에만 올인하라는 상황의 불합리성을 아이들은 자기들의 소재로 가져다 쓴다. 이혜경의 단편은 정민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점을 확보했고, 거기에 지수의 이야기가 병치되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다만 한 가지, 왜 청소년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조련하려고만 들까. 자기들 인생 팽개치고 자식들 인생의 플래너로 나서는 부모 말고, 부모 노릇에 대해서 고민하고 갈등하며 줄타기를 하는 부모도 있는데, 아이들의 갈등을 강조하려고 하다보니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체로 상투적으로 그려진다. 『호기심』 전편을 읽으면서는 그게 아쉬웠다.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임태희
임태희 단편의 주인공 나는 친구 형호네 생일잔치에 초대받았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고 그 자리엔 나를 자기 밥으로 아는 승권이도 왔다. 승권이네들이 자기를 쪼다로 부르고 있는 것에 주눅이 들어있던 나는 우연히 민희랑 방에 갇히는 상황이 되었고, 자기가 쪼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호기롭게 거짓말을 하나 보낸다. ‘그냥 덮쳐버렸지.....’ 남학생 특유의 치기어린 거짓말이 일파만파 번져 나가는 과정에서 상대편 민희는 누더기가 되고 만다. 자, 호기심이 불러일으킨 파국의 상황에서 대개의 남자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임태희 단편에서 빛나는 인물은 단연 민희이다. 내가 나서서 해명해야함을 다부지고 사려 깊게 설득시킨 민희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 과정에서 똑부러지게 소문과 맞섰던 민희, 민희 덕분에 삐달이 남학생은 사실을 말하게 된다. 그렇게 그 일도 지나가고 여전히 승권이네는 나를 쪼다 취급하지만, 난 이젠 쪼다라는 말에 주눅들지 않는다.
아이들 속에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군다나 작가는 민희와, 민희로 인해 쪼다라는 말에 괘념치 않는 나를 내세워 사태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임태희는 『쥐를 잡자』와, 『옷이 나를 입은 어떤 날』,「학습된 절망」으로 만난 작가이다. 그의 관심은 늘 학교, 교실, 아이들의 일상이다. 난 이 작가가 주목하는 당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에 잡힐 듯 당대성에 주목하되,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처럼 진정성을 전달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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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