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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르샤
Homepage    http://lechat.pe.kr
제 목    문과와 이과생 사이에 놓여있는 과학책들

* 국어교사모임에서 펴내는 계간지 <청소년문학>에 실린 네번째 원고입니다. 제 깜냥에 일년동안 고민하다가, 이 글을 끝으로 그만 쓴다, 안쓴다 했습니다. 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일이라 힘들었던 원고였습니다.



문과생과 이과생 사이에 놓인 과학책들


나는 올해 고2 문과반 담임이며, 문과의 문학 수업을 모조리 들어간다. 이과반 수업보다 배나 힘들다는 문과반수업이지만, 문학을 가르치기에는 문과반이 나을 때도 있다.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는 아이들이 이과반에 비해 많다는 점만 빼고는, 대체로 생기발랄 유치찬란한 문과 아이들과 나는 맞는 편이다. 그 문과반 아이들이 일년 내내 보는 책은 주로 소설이다. 어쩌다 잡는 과학책은 논술 주제로 읽어야할 때뿐이고, 수학을 못해서 혹은 과학이 싫어서 - 문학을 좋아해서 문과에 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 왔다고 과학에는 젬병이다. 우리반 ‘생활과학’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은 아이들을 힘들어하시고,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배우는 과학 수업이 수능에 반영되지 않으니 아이들은 홀대를 한다. 문과에서 과학은 이래저래 뒷전이다.  

국어선생인 나도 한때 문과생이었다. 요즘처럼 재미있는 과학책이 없기도 했지만, 그때 난 과학책을 찾아 읽은 기억이 없다. 어른이 되어서야 과학책 읽는 재미를 알았다. 그래서 요즘엔 열심히 과학책 읽기를 권한다. 문과반 아이들에게 과학책을 권할 때는 더욱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문과와 이과로 일찌감치 계열이 나뉘는 것, 그것의 구분이 단지 수학을 잘하고 못하고의 여부로 결정되고, 다시 감정이 메마른 이과생과 감성이 풍부한 문과생으로 도식화되는 것의 불합리성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때 인용하는 말이, 물리학자이면서 실은 굉장한 인문학자로 소개되는 정재승 선생님의 말이다. ‘수학에 젬병이든 철학이나 문학에 젬병이든 문과와 이과로 일찍 나누는 것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뇌의 절반을 자물쇠로 잠가놓고 사는 사람들이래, 우리 모두는 아주 말랑말랑하고 스펀지만큼 잠재력이 있는 양쪽 뇌를 가졌는데, 고등학교때부터 누군가가 우리를 이과와 문과로 분류하면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나머지 한쪽을 잠가놓도록 교육받았다고 말이야’ 그러면서 소개하는 과학책들은 다음과 같다. 문과반 아이들도 잘 읽어낸 과학책, 과학의 문제에 대해서 과학자와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책, 아니면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냄새에 반하게 되는 책 등이다.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안여림 외, 사이언스북스)는 ‘세계의 여성 과학자를 만나다’ 프로젝트라고 해서 이공계에 재학하는 여학생들이 직접  세계의 여성과학자를 만난 이야기를 모은 인터뷰 모음집이다. 이 책이 세상에 막 나왔을 때 나는 제목에 먼저 끌렸다.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이라니, 그리고 인생의 선배를 찾아가서 만난 책이라니, 우리 아이들에게 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예상대로 이 책은 내게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잘 만든 기획안이 빛나는 책 정도. 그런데 반응은 아이들로부터 왔다. 이과 아이들에게 더 맞을 것 같은 책을 우리반의 윤희가 빌려가서는 독후감을 써온 것이다. 2학년 문과로 진학하면서 과학 공부 안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찜찜하고 허탈한 기분이 들곤 했단다. 가보지 못한 길을 뒤에서 바라보는 심정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서너 쪽 빼곡하게 써온 글에는 선배 대학생들이 대신해서 만난 여성과학자들의 삶을 읽고 느낀 부러움과 경탄이 담겨 있었다. 지나 콜라타 선생님처럼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고도 싶고, 10년 넘게 쿼크를 연구한다는 분처럼 도전정신과 인내심을 배우고도 싶고, 과학의 핵심이 진실성이라고 말하는 노정혜 선생님을 통해 황우석 사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이야기, 무엇보다도 문과생들도 과학을 배우고 이과생들도 사회를 배운다면 훗날 자신들이 만들 사회가 탄탄해지지 않을까 라는 대견스런 이야기까지 담겨 있었다.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이 어찌 이 사람들뿐이겠는가? 우리는 과학책을 읽어서 행복하자, 어거지를 쓰면서 이 책을 소개하니 문과생 몇이 읽어보고는 대표적인 엄친딸 사례라 해서 웃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보기에 과학을 해서 행복한 사람들은 많다. 그 사람들 이야기를 좀더 깊이 있게 소개하는 책으로 『엉클 텅스텐』(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바다출판사)과 『열대 예찬』(최재천 지음, 현대문학)을 아이들에게 권하곤 한다. 『엉클 텅스텐』은 ‘꼬마 올리버의 과학 성장기’라는 부제처럼 올리버 색스라는 유명한 신경학 임상의사의 어린시절 성장기이다. 지금은 의사인 작가가 화학에 몰두해있던 어린 시절에 대해 쓴 자서전적인 책이다. 어린 올리버는 의사인 아버지를 비롯해서 야금학자, 화학자, 선생님들로 가득찬 대가족에서 태어나 학구적인 환경에서 자란다. 특히 텅스텐 필라멘트로 백열전구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던 ‘텅스텐 삼촌’이 꼬마 올리버의 호기심을 당긴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워낙 특출난 유대인 집안에 태어난 것이나, 평균을 넘어선 교육 환경이 평범하게 자란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대단한 가문이라고 할까.

그리고 이 책은 딸이 푹 빠져 읽은 책이기도 하다. 딸은 올해 이과를 선택한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우리반 아이들이랑 같은 셈인데, 작년까지만 해도 난 딸이 이과를 선택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심리검사를 하면 우리집 사람들은 한 사람만 빼놓고 전부 감성적인 지수가 높게 나오는데다가, 엄마랑 꿍짝이 맞고 소설책도 곧잘 읽곤 하던 딸이 이과를 가겠다고 했다. 선택은 본인이 하는 법, 나와 다른 길을 선택한 딸을 조금 경이롭게 보면서 가끔씩 책을 던져주고 있는 중이다.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도 실은 딸에게도 줬는데, 딸은 휘리릭 훑어보고는 밀쳐두었다. 선생님이 권했으면 솔깃해서 읽었을 것을, 엄마의 자리에서 권하니 싫었나보다.

그런데 『엉클 텅스텐』은 오래된 책 속에서 찾아 스스로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학교에 독후감을 내야 한다며 몰두해서 몇 자 적기까지 했다. 학교 아이들이나 우리집 아이나 책 좀 읽어라 하는 엄마 말은 귓등으로 흘리면서 독후감 써내라는 선생님 말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알아듣는다. 어린 아이들에게 독후감을 쓰게 하는 것이 책을 멀리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이런 것을 보면 학교에서 한 마디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엉클 텅스텐』으로 돌아와서, 딸은 과학자를 배출한 집안 분위기와 올리버의 호기심, 과학적 소양과 열정을 부러워했다. ‘열정이란 원래 그렇게 별처럼 밝고 뜨겁게 빛나다 시간이 지나면 꺼져버리나 보다. 올리버의 화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시들해지자 책을 읽는 내 마음도 괜히 섭섭했다’는 표현으로 올리버가 화학에서 의학으로 돌아선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그 소년 올리버가 지금 열정적으로 자기 분야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밖에. 나중에 올리버 색스가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이마고)나, 『색맹의 섬』(이마고)을 읽게 되면 화학계의 손실이 아니라 의학계가 대작가를 탄생했다고 평가할 지도 모르겠다.

딸이 이 책을 재미나게 읽는 것을 보고 학교 아이들에게도 가끔 이 책 이야기를 한다. 과학을 행복하게 한 사람,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 올리버 색스를 소개하며, 과학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황소개구리와 우리말’로 인해 최재천 선생님은 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 인기가 높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다 아름답다』(효형출판)나, 『알이 닭을 낳는다』(도요새)가 널리 알려졌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먼저 권하는 책은 『열대 예찬』(현대문학)이다. ‘정글에서 헤매는 행복’이란 부제처럼 이 책은 최재천 선생님이 코스타리카 일원에서 공부를 할 때의 경험을 중심으로, 자연과 동물과 인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잘 엮은 산문집이다. ‘현대문학’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으로, 선생님은 시인이 되고 싶었던 오랜 꿈을 말씀하셨다. 시인의 마음을 지닌 생물학자라는 찬사에 걸맞게, 이 책은 어린 시절 시인이 되고 싶었던 꿈에서부터,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다가, 언젠가는 과학의 문학화라는 거창한 꿈을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 현재의 구상을 늘어놓은 대목으로 나아간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소개할 때 나는 다시 문과와 이과 이야기를 한다. 최재천 선생님을 봐라, 이 분이야말로 과학자이기 전에 문과적 소양과 감성을 지닌 시인 지망생이셨어. 그리고는 문과적 소양과 인문학적인 시선이 있었기에 인간을 향한 과학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 우물을 파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필요한 인재는 한 우물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여러 우물 사이에 길을 낸 사람이다. 누군가 했던 말로 아이들을 끌어당기며 섣불리 자신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지 말라는 말을 한다. 그 모델이 최재천 선생님인 것이다.

문과생이 과학책을 안 읽고 수학을 잘 못하는 것, 이과생이 책을 읽지 않는 것, 그것들이 당연시되는 풍토는 잘못이다. 소설가 이윤기 선생님은 시인이나 소설가가 학창 시절 수학을 못한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면 호통을 치신단다.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세상을 보지 못하면서 무슨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는 것이냐 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의 달에 과학독후감대회를 하면서 정작 선생님들이 과학책을 읽지 않아 대충 넘어가는 일도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과라서, 과학 선생님들이라 책을 좋아하지 않고 많이 읽지도 않았다는 말씀을 하신다. 시인이 수학 빵점 맞은 것을 자랑하듯이, 이과는 책보다는 실험실에서 살았다는 말을 한다. 고등학교때부터 이과와 문과로 나누고 잠재능력을 잠가놓았다는 말을 하면서 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다리를 놓는 최재천 선생님이나 정재승 교수의 책을 든다.

이년 전 봄날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최재천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였는데, 그날 선생님의 강의 제목은 ‘알면 사랑한다 - 행복한 자연학자의 꿈’이었다. 청중이 대부분 중고생이어서 당신의 청소년기를 중심으로 강의를 하셨다. 그날도 과학자가 되려면 인문학을 해야 한다고 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는 책을 다양하게 읽어서 스스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힘을 가지라고 당부하셨다. 그 강의를 듣고 사서 읽은 책이 『열대 예찬』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올해 과학책으로는 『(국어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 읽기』(김보일 지음, 휴머니스트)와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강양구 지음, 뿌리와이파리)를 다함께 읽는 책으로 정했다. 희망자를 모아서 골든벨 형식으로 진행하는 독서퀴즈 도서지만, 꽤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과학책이 돌고 있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풍경이다.


마지막으로 과학책이라 우기면서 문과 이과 모두 읽으라고 권하는 책은 손택수 시인이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바탕으로 쓴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정약전 원저, 아이세움)이다. 어류도감이나 어류백과사전이 아닌 다음에야 과학책이랴마는, 나는 이 책을 과학책의 대열에 슬며시 끼워놓았다. 바다가 고향인 손택수 시인이 <자산어보>를 꼼꼼히 읽고 나서, 한문을 번역한 원문을 발췌 소개하고 작가의 해제를 실었다. 또한 정약전의 삶과 시대, 그리고 <자산어보>에 실린 수많은 물고기에 관련된 시와 어원을 잘 엮었다. 온전히 손택수 시인의 책인 셈이라, 출판사에서도 ‘나의 고전 읽기’ 시리즈로 묶었다. 이 책에서 손택수 시인은 실학자 정약전을 오늘에 생생하게 되살려놓았다. 실학과 천주교라는 뿌리에서 나온 민본주의를 실천한 사람 정약전, 그리고 흑산도 사람들이 살아있는 듯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다보면 물고기를 하염없이 들여다보았을 정약전의 모습이 떠오른다. 역사 속에 박제된 시기, 아득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청어, 상어, 날치, 아귀, 오징어, 말미잘, 가마우지, 김과 미역 등으로 훌쩍 오늘로 다가오는 바다도 있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를 문과생과 이과생 사이의 중간 지점에 놓는다. 인문학적 감성을 지닌 두 명의 저자의 책 『열대예찬』과 『엉클 텅스텐』도 그 사이에,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도 그 사이에 놓는다. 딱히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지 않고, 이 정도의 과학책은 꼭 한번 읽어줘야 하지 않나, 푸른 청춘들이 왕성하게 책을 읽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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