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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르샤
Homepage    http://lechat.pe.kr
제 목    [엄마] 수일이와 수일이


『수일이와 수일이』
김우경 장편 동화, 권사우 그림, 우리교육 (힘찬문고26)

미선이와 미선이
                                        2001. 12. 26


미선이와 미선이. 써놓고 여러번 불러보니 내 이름 '미선이'에는 일정한 울림이 있다. 잘 웃을 것 같고, 착할 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도처에 널려있는 싸구려 이미지. 오죽하면 미선이밴드까지 있을까. '미서니'의 조음과정에서 울리는 서늘한 음성이 새삼 기분 좋다. 어릴 적, 싱싱했던 아빠가 '선이야' 부르시던 때를 생각하니 너무 그리워 어지럼증이 생긴다. 언니와 싸울적, 갑자기 '네 이름은 미순이가 뭐냐, 촌스럽게...'라며 말도 안되는 고집을 피우던 날도 있었다. 미선씨, 미선이선생님. 여기까지는 선량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여기에 성을 붙여 불러본다. '서미선' 그 착한 느낌들은 다 어디 가고, 남의 의견에 도무지 귀 기울이지 않을 것 같은 완고함이 묻어나는가. 나만 그런가? 남들도 그런가? 『수일이와 수일이』를 읽은 지금, 나 그대로의 미선이와 내가 열망하는 미선이를 상상해본다.


우선 지금 그대로의 나부터. 나는 서른일곱을 목전에 둔 아줌마이고, 방학을 맞이해서 기뻐하는 국어선생이다. 개성이 빛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선비같은 한 남자의 아내이다. 아름다울 미자와 착할 선자를 이름으로 갖고 있음에도 '미'자를 붙여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건강미 정도. 나날이 살이 쪄서 거울에 비춘 모습에 내가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성정이 급해서 먼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는 곧 후회한다.

학교 다닐 적에 친구들이 나를 기억하는 모습은 일주일간의 스케줄표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스케쥴이 빡빡해서가 아니라 뭔가를 계획하는 순간을 즐겼다. 이것은 인생의 습관이 되어 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대학교 1학년때의 학생수첩을 보면 수업과 아르바이트와 세미나와 모임 일정이 빽빽하게 쓰여있다.

학교에서 MBTI 검사를 했는데, ESTJ가 나와서 마음 속으로 도리질을 한 적이 있다. 외향적이며, 체계적이고 조직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빠릿빠릿한 인간으로 구분된 검사표를 보며, 내가 바라는 모습과 나도 모르게 내가 지니고 있는 모습 사이의 간격이 크다는 것을 알 았다. 남들은 검사 결과를 해석하면서 즐거워하던데, 나는 싫었다. 명랑하고 활기가 넘치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내가 웃고 있지 않으면 '어디 아픈가' 묻곤 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표면적으로 할 일이 넘쳐서 바쁘게 살고 있다. 두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나를 이리 저리 내몰지만 그만큼 못하면서 듣는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마음이 쓰인다. 해야될 목록을 꼽아놓고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느느니 잔소리다. 좀 편한 엄마가 되어도 좋으련만 잘해주다가 벼락같이 소리지르곤 다시 미안해하고, 또 금방 잊어버리곤 잔소리를 퍼부어대는 엄마. 내가 말하지 않으면 제방에 불을 켜지도 끄지고 않고, 씻지도 않는 두 아이를 놓고 연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를 하다가 문득 이런 내 모습에 염증을 느낀 적이 있다. 때론 나도 우아하고 싶다.

또한 나는 사소한 것에 발목을 잡힐 때도 있다. 가스 요금 몇 천원 내는 것을 미루다 급기야 가스가 끊겨서 도시가스 사무실에 가서 요금과 다시 연결하는 출장비를 배로 지불한 후에야 가스가 공급되기도 했다. 또 하나, 이사 와서 첫달에 인터넷으로 아파트 관리비를 냈는데, 그 다음달 보니 연체되었다는 종이가 날아왔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알아보니 무심코 예전 아파트 동호수로 돈이 들어간 것이다. 이런 모든 사태에 직면하면, 그저 '허허' 웃고 말뿐. 가슴에 맺힌다는지,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벼르지도 않는다. 이런 내가 빠릿빠릿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또 한 명의 미선이. 상상속의 그녀, 그녀는 우선 센스가 넘치는 여자이다. 삶의 비결을 쥐고 있어서 이럴 때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아는 것도 많다. 요리를 잘 해서 가족들을 식탁에 모이게 한다. 퐁퐁퐁 행복의 샘물을 샘솟게 할 줄 아는 여자, 그녀는 나즈막한 어조를 갖고 있다. 성급하게 화를 내지 않으며, 천천히 말을 하되 끝까지 자기의 의도를 관철시킨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그녀는 자기 뜻대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만 그 사람들은 스스로 좋아서 한다고 생각을 한다.

또한 그녀는 학교일 뿐만 아니라 집안 일에도 빛을 낸다. 구석구석 잔손이 가서 늘 집은 반들반들하며, 바깥에서 빨리 집에 들어오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집은 안락하고 쾌적하다. 남편이 뭔가를 찾을 때면 '아, 문갑 두 번째 윗서랍에 들어있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이다. 또한 패스트푸드로 적당히 한 끼 때우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며, 엄마의 사랑이 깃든 간식을 맛있게 준비할 줄도 안다. 아이들은 이런 그녀를 참 좋아한다.

어느 날, 내가 간절하게 '남이 해준 음식' '남이 청소해준 깨끗한 집' '남이 해준 빨래'가 그리워 손톱을 깎아서 쥐에게 먹였다고 상상해본다. 본디 쥐지만 미선이의 모습을 한 그녀가 나에게도 왔다. 하루쯤 그녀에게 집을 맡기고 나는 화려하게 외출을 한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책방에 나가서 한참동안 책을 보기도 하고, 손꼽았던 영화도 보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도 한 잔. 독신의 여유로움을 맘껏 누리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 신나게 수다를 풀고 돌아오는 길, 시간에 쫒겨 발을 동동거릴 필요가 없다. 나는 오늘 완전하게 휴식이다. 완벽하게 우아했다. 그리고 나는 집에 들어오면서 슬며시 아이들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이녀석들, 엄마 생각이나 했을까? 참, 집에는 엄마가 그대로 있었지. 빨리 가자, 가서 그 녀석들 얼굴을 보자.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풍기는 맛있는 냄새, 그 냄새가 나를 먼저 부른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가짜미선이에게 잘 얻어 먹은 듯 너그러운 얼굴로 엄마를 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맹렬하게 아이들을 끌어안고 싶다. 아, 그런데 아이들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제 방에서 깔깔거리고 있다. 안방에 들어선다. 어느 결에 청소를 했을까? 아침햇살 빛에 훤하게 드러나던 골골이 쌓인 먼지들은 다 어디 갔을까? 반들반들, 보송보송, 파리가 앉았다가는 미끄러질 판이다. 완전히 하루 종일 파출부의 삶을 살았군! 하며 책상 위를 보니, 내가 보고싶었던 책이 내려져 있다. 어느 결에 책까지 봤을까? 베란다에는 새 빨래가 널려있고, 아침에 입을 남편 와이셔츠까지 다려져 있는게 아닌가?


이 책을 읽고 내가 상상한 것은 여기까지다. . 만약 가짜 미선이가 누구도 넘겨보지 않을 자리라고 여겼던, 하찮은 내 자리에 탐을 내었다면! 좀 끔찍하다. 나를 위해 주어진 시간을 나는 과연 '내 시간'으로 여길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다가 가짜수일이가 진짜를 나가라고 하고, 집안 식구들도 진심을 몰라줄 때부터 나는 수일이가 되어서 쩔쩔맸다.

가끔씩 가정법을 사용하곤 한다. '만약 내가 결혼을 안했더라면' 혹은 '만약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유치한 생각. 이 책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이끈다. 모자라고 넘치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라고. 이 책을 어제 밥 먹고 거실에 옹기 종기 모여서 각자 딴일을 하고 있던 시간에 읽었다. 동화책이라 빨리 읽히는 책, 읽다가 자꾸 아이들을 쳐다보니 그림 그리는, 음악 듣는, 삼국지 되풀이해 읽고 있는 식구들이 참견을 한다. 제목이 왜 그래? 엄마, 이 책 정말 화가 나, 내가 얘기해 줄게.......  이 동화를 읽으면서 '나다움'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하면 식구들이 뭐라고 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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