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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르샤
Homepage    http://lechat.pe.kr
제 목    [그냥] 그늘에 대하여


『그늘에 대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 산문선, 눌와


유명하다는 책이건만 나는 이 책을 처음 읽는다. 예전에 『음예 예찬』으로 나왔다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우연하게 이 책이 또 보인다. 수민이에게 넘기기 전에 먼저 읽은 김진애의 『매일 매일 자라기』에서 일본 건축에 대한 눈을 갖기 위해  『음예 예찬』을 추천했다. 바로 이 책이다.

그리고 옮긴 이 고운기 선생님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를 쓰신 분이다. 이 책을 우리집 한 사람과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삼국유사』에서는 말 그대로 그림과 사진으로만 휙휙 넘겼을 뿐, 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못했는데 연구자의 눈으로 풀어쓴 그 책은 참 재미있고 무궁한 텍스트였다. 올해 중학교 2학년 아이들과 함께 『가려뽑은 삼국유사』(모두와 읽은 책이라 수준을 고려해서 선택한 책이다.)를 읽으면서, 더 나아갈 책으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를 소개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재해석이란 이런 것이다, 부풀려 얘길 했더니 눈 밝은 몇이 그 책을 찾았다. 바로 그 선생님이 옮긴 책이라니, 책이 한결 가깝게 느껴졌다.



목차

그늘에 대하여
게으름을 말한다
연애와 색정
손님을 싫어함
여행
뒷간



정갈한 산문을 읽는 기분은 맑은 녹차 한 모금, 가벼운 소요, 머리카락을 날리는 선선한 바람, 촉감 좋은 만년필로 글을 쓰는 것, 들에 견줄 만하다. 저자가 말하는 그늘은 새하얗고 환한 서양 건축에 비해 일본 건축이 갖는 미학이다. 예를 들면 고풍스럽게 어둑어둑한 그러면서도 깨끗이 청소된 변소라든지, 나뭇잎을 만지는 것 같은 차분하고 촉촉한 종이의 결, 가라앉아 그늘진 혹은 세월의 손때를 상기시키는 듯한 흐릿함을 띤 도구들, 그런 건물이나 가구 가운데 살면 기묘하게 마음이 풀리고 신경이 편안해지는 마음이다. 차분하게 가라앉는 다다미방을 비추는 간접적인 둔한 광선을 저자는 특히 고맙다는 느낌이 드는 엄숙한 것이라 표현했다. 1933년에 쓴 글이라는데 오늘 읽어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다.

눈길을 끄는 단어 ‘색기’를, 내부로 억제된 애정을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아서, 때로 무의식적으로 말씨나 몸짓 끝에 드러나는, 대개 그런 애정의 뉘앙스라고 풀어내는 대목.

게으름을 말하면서 마무리하는 말로, 나는 결코 게으른 자가 되는 것을 그대들에게 부추기려는 뜻이 아니다. 그렇지만 정력가라든가 근면가라든가 일컬어지는 것을 자랑스레 여기고 또는 그것을 자기 쪽에서 억지로 떠벌리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므로, 더러는 게으름의 미덕 - 그윽함을 상기하더라도 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라고, 조심 조심 말하는 대목도 좋았지만,

통째로 옮겨놓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손님을 싫어함’의 첫 부분, 무척이나 긴 두 문단은 이렇게 이어진다. 문단 나누기는 내가 자의적으로 좀더 자잘하게 했다.


분명 데라다 도라히코씨의 수필로, 고양이 꼬리에 얽힌 일을 쓴 것이 있는데, 고양이에게 저런 꼬리가 있는 것은 어떤 쓰임새 때문에 마련한 것인지는 모르겠고, 전혀 쓸모없는 물건처럼 보여서, 인간의 몸에 저런 거추장스런 물건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을 잘됐다고 쓰인 것을 읽은 적이 있지만, 나는 그와 반대로 나에게도 저런 편리한 물건이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일이 여러 차례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고양이는 주인이 이름을 불렀을 때 야옹하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내키지 않으면, 묵묵히 살짝 꼬리의 끝을 흔들어 보이는 것이다. 툇마루 같은 데에 웅크리고서 앞다리를 가지런히 구부리고, 잠든 듯 잠들지 않은 듯 그런 표정을 짓고서, 꾸벅꾸벅 햇볕을 쐬며 졸고 있을 때에 시험 삼아 이름을 불러보면, 사람이라면, 에이 시끄러워, 사람이 모처럼 기분 좋게 꾸벅꾸벅 잠들려는 참에, 자못 싫은 듯이 선대답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는 체하는 것이지만, 고양이는 반드시 그 중간의 방법을 취해 꼬리를 가지고 대답한다.

몸의 다른 부분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 동시에 귀를 꿈틀 움직여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휘두르지만, 귀를 움직이는 동작은 곧 거둔다 - 반쯤 감긴 눈을 살짝 뜨는 일조차 없이, 적요한 자세 그대로 의연히 움찔거리면서, 꼬리의 끝만을 가볍게 한두 번 살랑 흔들어 보이는 것이다.

한 번 더 부르면 또 살랑 흔든다. 집요하게 불러대면 대답이 없어지지만, 두세 차례 이 방법으로 답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은 그 꼬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고양이가 아직 잠들지 않은 사실을 아는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고양이 자신은 반쯤 잠들어 있고, 꼬리만이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아닐까, 무엇이 되었든지 그 꼬리를 가지고하는 대답의 방법으로는 일종의 미묘한 표현이 깃들어 있어서, 소리를 내는 것은 귀찮지만 묵묵히 있는 것도 너무 무정하므로, 슬쩍 이런 방법으로 인사해 두자는 듯한, 그리고 또 불러 주는 것은 고맙지만 실은 자기는 자고 있으므로 참아 주지 않으시려오, 하는 듯한, 뺀들거리는 듯하나 붙임성 있는 복잡한 기분을 그 간단한 동작으로 매우 교묘하게 나타내는 것인데, 꼬리를 가지지 않은 인간으로서는 이런 경우가 생겨도 정말 이런 요령 있는 흉내는 낼 수 없다. 고양이에게 그런 섬세한 심리작용이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저 꼬리의 운동을 보면 왠지 그런 표현을 하고 있는 듯이 생각되는 것이다.

내가 어째서 이런 말을 꺼내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실로 자주, 내게도 꼬리가 있었더라면 생각하고, 고양이를 부럽게 느끼는 경우에 마주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상 앞에서 펜을 쥐고 있거나 사색하고 있는 사이에, 돌연 집사람이 들어와 자질구레한 일 등을 하소연한다. 나에게 꼬리가 있다면야 살짝 두세 번 끝 쪽을 흔들어놓고, 괘념 않고 집필을 계속한다든지 사색에 빠진다든지 할 것이다.

그보다 더 통절히 꼬리의 필요를 느끼는 것은 손님을 상대하게 될 때이다. 손님을 싫어하는 나는 어느 정도 뜻이 맞는 동지라든지 경애하는 친구라든지 오랜만에 만나는 경우를 빼고, 좀처럼 내 쪽에서 반가운 사람을 면접하는 일이 아닌, 대개 언제나 마지못한 만남이기에, 말할 일이 있을 때는 별도로 치고 늘어지도록 잡담하는 상대를 대하고 있자면, 십 분이나 십오 분쯤 되면 참지 못하고 싫증이 난다.

그래서 자연 이쪽은 듣는 역할을 하고 손님은 혼자서 떠드는 쪽이 되어, 내 마음은 걸핏하면 멀리 담화의 주제로부터 벗어나서 엉뚱한 쪽으로 끌려가고, 손님을 완전히 두고 떠나서 멋대로 공상을 좇아간다든지, 조금 전까지 쓰고 있던 창작의 세계로 날아간다든지 한다.

따라서 때로 “예”라거나 “음”이라거나 응답은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점점 건성이 되고 뚱딴지가 되어, 사이가 너무 비게 되는 것을 면할 수 없다. 때로는 아차 싶게 예를 잃은 것에 마음이 쓰여 정신을 바짝 차려 보지만, 그 노력도 길게 이어지지 않고 얼마 지나면 곧장 또 유리되고 만다. 그런 때에 나는 마치 자신이 꼬리를 기르고 있는 것처럼 상상하고, 엉덩이가 근질거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라거나 “음”이라거나 말하는 대신에, 상상의 꼬리를 흔들어 그것만으로 넘어가 버리는 적도 있다. 고양이의 꼬리와 달리 상상의 꼬리는 상대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유감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서는 그것을 흔드는 것이 흔들지 않는 것과 얼마 만큼 다르다. 상대방으로서는 알지 못해도, 나로서는 이것을 흔듦으로써 응답만은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특히 공감하며 읽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떠났다가 이런 귀한 글과 마주치다니, 고마운 책, 목소리 높여서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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