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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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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어샘]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김혜진 외, 바람의아이들 (청소년문학선)

                                                                      2008년 2월 10일


『호기심』과 함께 다시 한 편 한 편 꼼꼼하게 읽고 정리한 글이다. 역시 1차 자료.



「정오의 희망곡」, 박정애

내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열심히 듣고 예쁜 엽서를 방송국에 보냈던 것처럼, 요즘 아이들도 라디오를 끼고  살거나, 문자나 게시판으로 그들의 메시지를 전송한다. 박정애의 단편 「정오의 희망곡」은 제목처럼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 보내온 한 아이의 사연을 소재로 고민의 과정을 보여준다. 홍홍이라는 아이디로 보낸 사연 속 청소년은 공부만 강요하는 아빠에게서 받는 성적 스트레스가 힘겹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홍홍이가 제 사연을 전송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제 고민에 공감하며 위로를 해주는 것이 홍홍이에겐 힘이 되었던 셈. 그러나 홍홍이가 제 발로 디딜 수 있던 힘은 익명성의 위로가 아닌 구체적 현실 속의 친구를 얻고부터이다. 사연을 보낸 것을 계기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현실의 친구가 생겼고, 무력하게 남편을 바라보던 엄마가 홍홍이의 친구가 되어준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박정애는 부모의 욕심이야말로 악성종양이라고 썼다. 같은 부모로서 가슴이 덜컹하는 말이었다. 단편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여행자금을 주면서 더 큰 세계를 보고 오라고 했다. 악성종양이 부모 욕심이라면 그것은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자연 치유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부터도 부모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음이 넓은 엄마인 척 했다가 돌변해서 공부 스트레스를 슬쩍 외면해버리는 엄마가 아닌가 때때로 고민스럽다. 이런 고민의 와중에 만난 홍홍이의 엄마, 그리고 그릇된 방법이지만 제 나름대로 자식 공부에 올인했던 아빠의 마음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내겐 부모 노릇의 반면교사인 셈이다. 이 단편을 우리 아이들이 읽으면 어떤 지점에서 멈출까 싶다.  



「쥐포」, 이경화

「쥐포」는 89년 전교조 결성 당시 고등학생으로 현장에 있었던 작가의 체험이 묻어나는 단편이다. 후일담이라고 하기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미안한 분위기는 작가의 말에서 ‘의식하는 그것에 의해 존재는 구분되어진다’는 말에도 담겨있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문학적 형상화가 덜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준범 선생이나 승진이형의 말이 고스란히 옮겨지는 것이나, 쥐포의 상징성이 작품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별로.



「Reading is Sexy!」, 이경혜

이 단편에서 줄곧 나오는 ‘섹시함’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는 섹시함이란 종을 번식시키고자 살아남고자 하는 힘, 그런 안간힘에서 나오는 생명력이라고 하며, 최소한 자신의 삶이 지금 섹시한가 그렇지 않은가 반문해보라고 주문한다. 수준 높은 질문이다.

병색이 짙은 아버지, 라면집을 해서 생활비를 버는 엄마, 그런 환경에서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하는 아이 연저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산다. 자신이 라면집 딸이라는 것이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연저. 자신의 삶을 탁탁 정리하기까지 겪었을 마음의 갈등이 없진 않겠지만, 그래도 건강하고 섹시하게 발을 내딛는 모습에 주인공 민기처럼 반발의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안간힘을 다해 자신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연저를 보고 있으면 민기가 연저에게 반한 것처럼 마음이 넘어가고 만다.

청소년소설을 읽다보면 대학입시라는 담론을 뛰어넘어 자신의 삶을 계획하는 인물들을 자주 만난다. 훌쩍 뛰어넘는 과정에서 상처를 얻기도 하고, 여전히 그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연저처럼 야무지게 뛰어넘기도 하는 아이들, 치열하다는 면에서는 모두 섹시한 아이들이다. 이 단편의 미덕은 읽는이에게 수준 높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점이다. 빛나는 미래와 건전한 속물 사이, 우리는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가? 그 물음을 민기와 연저의 만남으로 풀고 있는 단편 「Reading is Sexy!」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독서행위 자체를 섹시하다고 느끼는 인물이라니, 내겐 개인적 취향에도 딱 들어맞는 작품이었다.          



「내가 왜 그랬지?」, 이상운

이 단편은 제목부터가 물음이다. 방학동안 선행(善行)을 하고, 그게 왜 착한 짓인지 논리적인 근거를 써오라는 국어 과제를 위해서 나 정현서는 궁리를 거듭한다. 논리적인 근거를 대고 할 수 있는 착한 일이라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러다가 우연히 집 앞에서 마늘 까는 할머니를 보고는 그 마늘을 전부 사드림으로써 착한 일 해오라는 과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는다. 시작은 어릴 적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했고, 힘들게 애쓰시는 할머니에 대한 안된 마음이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쌍한 할머니를 위해 착한 일을 했다’는 어정쩡한 이해는 할머니의 화를 불러오고, 어설프게 이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의 상처를 건드릴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왜 그랬지? 라고 말이다. 한 편의 꽁트.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 박상률

소설가의 어릴 적 첫사랑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었다. 글이란 게 묘해서 쓰는 사람이 누가 되었든 결국 쓰는 사람 얘기하고 했는데, 이건 고스란히 작가가 생각나는 단편이다. 뭔가 자꾸 지금의 모습에 알리바이를 세우는 것 같아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래서 소설이야, 에세이야, 시비 거는 마음이 되었다. 아무리 자전적 경험이 고스란히 담았다 해도 다소 유치하다. 내가 너무 야박한가?



「학습된 절망」, 임태희

열심히 해도 안 될 것을 미리 아는 것은 비참하다. 삐꾸는 누나에게 얹혀산다. 뭔가 하나라도 잘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같이 쉽지 않다. 생전 잘한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는 병신같다고 해서 삐꾸라고 불린다. 학교에선 왕싸가지 패거리들의 밥이고, 집에서도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축구에서 깨지던 날 왕싸가지에게 죽어라 맞은 이유는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는 소리부터 해서였단다. 끝장면, 엉망으로 터져서 돌아와 제대로 서지도 못했을 때, 매형이 차라리 기어서라도 오라고 했을 때, 우리의 삐꾸는 그래도 기는 것은 별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닥이라고 해도 기는 것은 별로라고 버티는 힘, 이게 작가가 삐꾸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라 생각했다. 나도 삐꾸 파이팅이라 외치고 싶었다.

학교에도 삐꾸와 같이 무기력한 아이들이 가끔 있다. 왕싸가지와 같이 비열한 녀석들이 판치는 교실에서 그 아이들은 없는 듯이 지내고 싶지만 못된 녀석들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럴 때 뭐라 뭐라 하지 말고, 그냥 아이들 속에 이 책을 던져놓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자기들도 느끼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제목으로 달지 않아도 이 단편을 읽은 사람이면 주인공 삐꾸의 자리를  짐작하는데, 제목이 너무 친절했다.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김혜진

유리 공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고3 시은이, 시은이는 수시에 합격을 해서 뜻밖에 시간을 얻은 셈이다. 거기서 삼수생 상천이를 만나 풋사랑을 키워간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한 가지, 얼떨결에 삼수생이라고 속인 일이다. 풋풋하고 애틋한 마음이 생길수록 자기의 거짓말에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거기에 유리공예 가게 주인의 깨져버린, 그래서 상처를 받은 사랑이 한 자락 깔려 있다.

‘깨지기 쉬우니 조심해서 다뤄주세요’라는 말은 상처를 받기 쉽다는 말과 다르다. 깨져버린 유리 조각으로 다시 만든 유리병처럼 깨진 것들은 다시 회복될 수 있다. 문제는 상처를 받은 것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연하여 깨지지 않는 사람 같은 것. 시은이와 상천이의 풋사랑은 서로를 상처주지 않을 마음 씀씀이로 해서 깨지기 쉬웠으나 깨지지 않을 사랑으로 남았다. 오랜만에 풋풋한 사랑을 읽게 되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제목이나, 유리 공예 가게라는 설정, 그래서 깨지기 쉽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거기에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가게 주인의 옛사랑의 상처가 일렁이는 것치고는 시은이와 상천이의 사랑이 별로 장애될 것이 없는데 갈등이라고 내세우네... 하면서 읽은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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