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0_6일차_사누르에서 꾸따와 스미냑 거쳐 짐바란으로
2025년 1월 20일(월)
사누르에서는 일출, 짐바란에서는 일몰! 가기 전부터 들은 말이었다. 사누르에서 마지막 아침을 맞은 20일에 일출을 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잠을 깼다. 하늘이 잔뜩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해변에 나가 일출을 보려고 한 계획은 취소, 침대에 누워 있다가 루프탑에서 봤다. 두터운 구름이 이날의 날씨를 예고했다. 루프탑은 쓰나미 피난 장소라는 사인이 있었다. 몇년 전 이곳에 쓰나미가 왔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이날은 11시에 픽업을 하니, 진정 여유롭게 지내도 되는 날이다. 우린 밥 먹기 전에 일요일에 올라온 옥씨부인전 14회를 봤다. 흥미진진했다. 고3 고전문학감상을 가르치는데, 이걸 어떻게 수업 자료로 쓸까 궁리를 했으니, 평생 수업을 한 게 몸에 배었구나 나도 깜짝 놀랐다. 암튼, 한사람과 나란히 흥미진진 집중하며, 옥씨부인 아니 구덕이를 응원했다.
홀리데이인에서 조식은 두번째로 먹는다. 우린 물 흐르듯이 가져와 흐뭇하게 먹었다. 디저트로 멜론, 수박, 파파야, 초코크라상과 커피를 놓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교사로, 또 나란히 한사람과 같이 살아온 시간에 점을 찍는 시점에, 이런 알록달록한 디저트를 앞에 둘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한사람은 데우스 티셔츠를 입었고, 난 비를 맞아도 빨리 마르는 베이지 블라우스와 흰바지를 입었다. 이 날은 꾸타를 지나 요즘 한창 뜨고 있다는 스미냑를 거쳐 짐바란으로 간다. 해변뷰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원뷰가 좋았던 방에서 사진을 남기는 사이, 한사람은 헤비레인이 예상되는 날에 썬크림을 골고루 발랐다.
오늘 드라이버는 차 안에서 내내 케이팝을 틀었다. 블랙핑크, 엔믹스, 키스오브라이프, 아이브… 아는 노래 한두 개는 있었지만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그리고 이처럼 중독성이 있는지, 생각보다 케이팝은 유튜브에 힘입어 세계 구석구석에 들어갔다는 생각을 했다.
꾸타 비치에 도착했다. 오늘의 웃음포인트! 오늘 일정의 첫번째는 ‘beachwalk’이었다. 우린 당연히 꾸타 비치 걷는 시간을 주겠구나 했는데, 기사님이 간 곳은 이 이름을 가진 쇼핑센터였다:) 우리는 real! 비치를 워킹하고 싶다고 했고 ㅋㅋㅋ 웃은 다음에 해변에서 30분 시간을 가졌다. 기사님이 찍어줘 우리 둘은 나란히 섰다.
꾸타 비치는 사누르와는 다르게 파도가 일었다. 사누르가 휴양지로 개발된 첫번째 지역이라면, 쿠타는 서핑을 배우러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젊은이들의 힙한 문화가 자본과 쇼핑을 만나 짱구와 스미냑으로 확산되었다면, 꾸타는 원조 서핑 성지인 셈이다. 해변에는 서핑을 배우라고 호객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 우중충한 하늘을 보며 아줌마에게 이런 말이 나와요? 노 땡큐, 저는 그냥 비치워킹을 하러 온 것 뿐이라구요.
잠깐 짬을 내서 코코넛쥬스를 마시고 앉아서 파도를 봤다. 저 멀리 능숙한 청년이, 동네 아이들 둘이, 배운다고 허우적대는 사람 몇이 파도를 타고 있었다. 빅웨이브는 친구들과 함께 갔던 포르투갈 나자레에서 봤다. 거기가 중후한 프로의 공간이었다면 쿠타 비치는 서핑 초보자들의 연습장이다. 난 이벤트 이후에 평형 감각에 좀 문제가 생겼다. 요가를 배울 때 한쪽 다리로 서는 게 유독 힘들었으니 서핑 도전은 애저녁에 글렀다.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운동 종목이다. 그저 부러워 한참 바라보기만 했다는 이야기다.
쿠따에서 점심을 먹고, 스미냑에서는 카페에 들렀다가, 얼른 짐바란으로 가서 체크인하기. 이날의 계획이었다. 기사님이 우리가 요청한 베트남 국수집과 딤섬 요리 잘하는 집을 찾아줬고, 우린 ‘멘보이 베트남 키친’에 갔다. 한사람과 같이 다녔던 하노이가 생각났다. 그때 골목에 앉아서 분짜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제대로 된 쌀국수와 스프링롤, 분짜를 먹었다. 그때는 향채를 조금 빼고 먹었는데 이번에는 분짜 쌈에 향채를 듬뿍 넣었다. 향기로웠다. 왕창리 밭에 민트, 바질, 고수를 좀더 잘 심고 가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사님이 쿠따 시내에 있는 추모비를 안내해주셨다. 2002년 휴양지였던 발리의 쿠타 비치클럽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터져 202명이 죽었고, 여기에 한국인도 두 명이 있었다는 것을 찾아보고야 알았다. 추모비를 향해 가는 길에 느닷없이 폭우를 만났다. 스콜인 줄 알고 기다리다가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다. 호주인을 포함해 전세계 사람들이 이슬람 과격단체의 테러로 희생된 사건, 그곳에서 일했던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꽤 되었다. 2002년이라면 우리에게 월드컵으로 각인된 해였는데, 이곳에서는 충격적인 테러가 일어났다. 추모비 조금 지나 테러 현장이었던 사리 클럽에 상업시설이 들어오니마니 했고, 유가족이 반대했다는 기사만 있었다. 기사님이 휙 지나가며 저곳이라고 하셨는데, 건설현장처럼 가림막이 있었다. 뒤늦게 명복을 빌었다.
비도 오고, 스미냑에서 딱히 비치클럽을 갈 것도 아니고, 우린 커피 애호가로서 맛있는 커피집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기사님은 예전에 ‘스미냑 빌리지’ 맞은 편 카페에서 일했다며 카페 ‘떼무’를 추천했는데, 안쪽으로 멋진 정원을 가진 고즈넉하고 힙한 카페였다. 에스프레소와 롱블랙, 그리고 화장실 다녀오다가 만난 일러스트레이터의 전시, 나오다 들어간 샵에서 구매한 맥북 스티커 모두 좋았다. 특히 스티커에 쓰인 말이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ora nguli ora mangan)’를 패러디한 ‘ora nguli ora smile’이라니, ‘No working, No smile’ 오케이, 난 그 유머와 기개에 감동했다. 수혁이가 어릴 적 가는 도시마다 그곳의 아이스크림을 먹어보듯이, 나는 고양이 관련 소품이나 맥북 스티커를 모은다. 지금 내 맥북에 딱 붙어 있다.
마지막 숙소인 르 메르디앙 짐발란에 도착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하나씩 있었다. 좋은 것은 같은 가격으로 클래식룸을 수영장이 딸린 스위트룸으로 바꿔준다는 것이었고, 나쁜 것은 1층 수영장과 바로 나갈 수 있는 테라스 지닌 엄청 큰 방에서 곰팡이 냄새가 좀 난다는 것이었다. 이걸 어쩐다…. 수영장에 면해있어 습기가 느껴지는 것은 (한참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 냄새는 에어컨 필터에 있는 곰팡이 냄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리셉션에 전화를 해서 와서 봐달라고 했다. 5층으로 옮겨줄까, 아니면 어떤 조치를 할까요? 우린 수영장 딸린 스위트룸에 반한 상태라서 몇 가지 조치를 요청했다. 제습기를 놓았고, 슈퍼드라이라고 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양키캔들처럼 생긴 것을 가져와 아로마오일을 피웠다. 그리고 내일 오전에 한 시간 정도 와서 에어컨 필터를 청소해준다고도 했다. 뭐 그렇다면야:)
다음 날은 일정을 싹 비우고 리조트에서 마냥마냥 늘어지는 날이다. 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지내다 쉬다가 할 생각인데, 이때만큼이라도 잠시 비가 멈추기를… 빌었다.
저녁은 기사님이 ‘my pleasure’를 담아 추천해준 해산물 레스토랑 ‘Menage Cafe’에 갔다. 바다에서 일몰을 보면서 직접 픽한 해산물을 구워먹는 가게인데 쓰나미가 몰아치기 직전의 바람과 폭우를 보면서 다들 실내에서 매캐하게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어이가 없는 이 상황이 실화였다. 우린 끼니마다 잘 먹어서 여기서는 조개 구이와 오징어튀김만 시켰다. 그 대신 글라스 와인을 시키려고 했는데 두 잔을 시키나 한 병을 시키나 비슷하다니 얼른 한 병. 얼큰하게 둘이 취해서 들어왔다는 이야기로 끝난 하루다.
늘 여행지에서는 일찍 잠이 들고 대신 새벽에 잠이 깬다. 이어폰으로는 뉴스공장을 비롯해서 속보로 올라온 뉴스를 듣고 서부지법 사태에 경악했다. 윤석열 체포당한 것을 보고 안심하고 인도네시아에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한사람은 내가 새벽에 깨서 사부작사부작해도 잠을 잘 자는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하늘이 흐려 루프탑에 올라가 해가 뜨나 안뜨나 봄
여기가 쓰나미 대피 장소라고
나란히 옥씨부인전
발리커피는 구수한 맛이 특징, 맛있었다
이 디저트 접시처럼 남은 시간이 달콤하고 아롱다롱하려면, 운동 잘 하고 사람들에게 잘 하고 고마워하며 열심히 살다가 가끔 이렇게 와서:)
한사람이 입을 티셔츠가 없다고 우붓에서 산 데우스 웃옷을 입었고
난 물에 젖어도 금방 마르는 베이지 남방을 입었다. 여행지에서 이어폰은 필수다.
사누르에서 꾸타 비치 들러서
비치 워킹을 하고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기사님이 한 장 찍어주셨고,
코코넛쥬스를 하나 시켜서 다리쉼을 했다. 두 개 시키면 배불러 죽을 뻔
결혼식이 있다고 골목 통째를 빌림
꾸타 시내의 베트남 음식점에서 분짜와 쌀국수를 먹었다. 맛있음
점심을 막 먹고 나오는데 엄청난 폭우. 챙 아래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치지 않아 우산을 썼다
기사님이 안내해줘서 2002년 발리 폭팔 사고 추모비에 갔다. 나중에 사건을 찾아봤다.
꾸타에서 짐바란으로 가는 차 안에서. 비가 오는데도 오토바이 탄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미냑에서 다른 사람들은 비치클럽을 간다는데, 비 오는 점심 무렵 중년 부부에게 비치클럽은 무리였다. 스미냑 빌리지에서 하차, 맛있는 커피집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들어간 카페 떼무. 기사님이 알바로 일하던 곳인데 제대로 카페였다. 중심가에서 한 골목 들어왔는데 중정이 이리도 아름다운 고즈넉하고 멋진 카페가 있었다. 우린 여기서 카페인을 충전했고 멍하게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카페 바로 옆이 전시장이었으니, 개성이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둘러봤다. 그리고 여기서 만난 장서표들!
전시장 옆의 가게에서 산 스티커. ‘일하지 않겠다, 웃지도 않겠다’ 이 멋진 기개!
스미냑을 왜 청담동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가게들이 멋스러웠다. 그 중 오늘의 문장으로 ‘세상 모든 엄마는 여왕이다’를 찍어 보냈다 ㅋㅋㅋ
만나기로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안 오시는 기사님을 기다리며 사진 찍기
짐바란 르 메르디앙에 도착했다. 콘시어지에서 순박한 풍경
수영장으로 바로 나가는 스위트홈으로 바꿔주고 방도 엄청 넓었지만, 곰팡이 냄새가 나서 요청 사항을 넣은 방. 그러길 잘 했다.
원래는 짐바란 비치 모래사장에서 촤르륵 야외 씨푸드 레스토랑이 펼쳐진다는데, 엄청 엄청 비가 쏟아졌다.
호텔 바로 앞이 씨푸드 레스토랑이었다. 추천받은 메네가 카페에서, 그나마 오징어튀김과 조개구이와 와인 한 병
와인에 취한 한 사람은 잠이 들었고, 난 하루를 정리한다고 좀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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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