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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처소, 이 공간에는 잡다하고 주의 산만한 제 흔적을
올립니다. 독서일기에서 시작하여, 영화 본 이야기, 음악 들은
얘기, 아이 키우는 해프닝(^^), 별 주제없는 수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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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르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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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수민이 친정 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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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이 친정 나들이
2024년 9월 20일(금) 새벽
(미주알고주알 사적인 내용입니다. 아카이브삼아 몽조리 적는 것이니 휘리릭 넘어가셔요:)
추석 연휴 마지막날, 난 아침에 친정 엄마를 보러 가서 아침을 먹고 왔고, 저녁에 수민이가 친정집인 우리한테 왔다. 시댁에서 너무 많이 먹었다고, 가볍게 먹자고 해서 우린 의정부에서 오는 길에 트레이더스에 들렀다. 그래도 친정엄마한테 오는 것인데, 조그만 모둠회 한 접시에 유린기 한 접시가 다인 상을 보려니 그때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엄마집인데. 결혼하고 나서 처음 맞는 추석상이 너무 가난했다.ㅜㅜ 장모로서 추석상은 처음이라서ㅜㅜ 내년 추석엔 좀더 잘 차려줘야지. 아이들은 오자마자 집 앞 편의점에서 레몬에이드를 사러 나간다고 하면서 물에 부워먹는 얼큰누룽지탕도 사왔다. 뜨끈하게 떠먹을 것이 있으면 좋다고 했다. 유린기 치킨은 에어프라이어에 데우고, 조금 적은 듯한 모둠회를 놓고 둘은 사케를 맛있게 마셨다. 술을 잘 못 먹는 사위가 애주가인 장인을 따라서 마셨다.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으니 마음 편하게 먹는다고 하는데, 둘 다 얼굴이 발그레했다. 우리집은 여자들이 술을 더 잘 먹지만 남자들만 먹는 것으로.
저녁이 적긴 했다ㅜㅜ 수민이가 넷플릭스 보면서 야식을 시켜 먹자고 해서 메뉴를 고르다가 ‘곱창'에 의기투합을 했다. 진짜 친해지고 있다. 배달음식 곱창볶음을 먹으면서, 보리 나물이를 간간히 이뻐 하며, 넷이 나란히 넷플릭스를 봤다. ‘흑백 요리사'를 추임새를 넣어가며 넷이 보는데 사위가 한 식구가 되었다는 실감을 했다. 열 시가 넘어서는 ‘나는 솔로'를 이어서 본다고 해서 난 자러 들어갔다. 네 사람 중에 출근하는 사람은 나 혼자다. 아이들은 추석날까지 엇갈려 일을 했고, 수목은 쉬는 날이라고 했다. 거실에 토퍼를 깔고 자라고 했다.
우리가 대구 거실에서 자면 어머님이 조심조심 아침 준비하러 나오시는 것처럼, 나도 한사람 아침을 차려준다고 발꿈치 들고 걸었지만, 자기 방에 들어가서 더 잔단다. 그러렴. 아침은 원래 안 먹는다니, 신상 맛 보라고 서리태두유를 만들어놓고, 난 한사람 아침만 차려주고 학교에 갔다.
수민이와 동민이는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의정부 할머니네 간다고 했다. 수민이도 수민이지만 난 동민이가 참 고마웠다. 수민이는 키운 정이 있어 할머니를 챙긴다고 하지만, 동민이는 어른들 공경하며 자란 태가 난다. 결혼 전에도 국화 화분을 사가지고 의정부 엄마한테 가서 인사를 드렸다. 그 화분은 엄마 옥상에서 지금도 피고지고 있다.
수요일 아침에 엄마한테 갈 때 난 갈비 잰 거 한 통을 챙겨 갔다. 내일 아이들 오면 이거 구워주시라고. 엄마는 우리한테 해줬던 것처럼 밤밥에 더덕무침에 갈비에… 여든 다섯살 할머니가 손주 사위 상 차린다고 애를 쓰셨다. 아이들은 과일을 사가지고 간다더니 보내온 사진을 보니 아예 메론을 깎아서 통에 넣어 드렸단다. 동민이가 처음 엄마 보러 왔을 때는 바깥에서 맛있는 거 사드리고 집에 와서 다과를 먹었다는데, 그때 과일을 참하게 깎았다고 동민이를 엄청 칭찬을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메론을 깎아준 동민이라니. 엄마는 어제 아이들에게 대접을 받으며 마음이 붕붕 하늘로 올라가셨을 것이다.
참, 수민이가 의정부 가서 지낸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수혁이한테서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 자기네도 다다음주쯤 할머니한테 갈 건데, 알아서 전화 드리면 되죠? ㅋㅋㅋㅋㅋ 누나한테서 수혁이는 또 배우고 있다. 잠재적 교육과정이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하늘에서 아버지가 내려다보고 계시겠지. 생전에 수민이와 수혁이를 끔찍이도 이뻐하며 키워주셨는데, 내려다보며 기뻐하실 것이다. 엄마는 또 일기장에 나처럼 어제 일을 적을 것이고.
수민이가 보내온 사진 중에 할머니 일기장을 주르륵 늘어놓고 찍은 게 있다. 남는 공책들에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조금씩 적었다는 말을 했는데, 수민이가 보고 일련번호를 매겨드렸단다. 2022년 정영숙 일기 1)로 시작해서 마지막 공책은 2024년 6월~ 이라고 적혀 있다. 문방구 하다가 남은 초등학생용 공책에 엄마는 매일 아침 일기를 쓰고 색칠공부도 한장씩 한다고 했다. 오빠가 문을 쾅 닫고 신경질을 부릴 때마다 고스란히 적어놓는다고 ㅋㅋㅋㅋㅋ 엄마 돌아가시면 난 우리 엄마 일기장부터 읽을 것이다.
수민이가 집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자기 방에 봉투도 올려놓았다니 엄마 가지란다. 명절에 선물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시댁이랑 똑같이 한거란다. 지난 추석에 수민이가 준 봉투도 서랍에 고스란히 있는데, 거기에 넣어둬야겠다. 아이들에게서 받은 돈은 하나도 쓰지 못하는 마음, 엄마도 그랬을까.
이번 추석 연휴는 매일매일이 이벤트였다고, 미주알고주알 기록한다. 십 년 이십 년이 또 금방 지나서 이 글을 볼 때면, 처음 맞이한 사위 추석상차림에 또 미안한 마음이 들 것이다. 유난히 더운 올 추석에 난 훈훈하게 잘 지냈다고 적는다.
부끄럽지만 기억한다고 한장 찍었다. 달랑 두 개만 올려놓았으니 ㅜㅜ 아이들이 사온 얼큰누룽지탕에 레몬에이드를 더해서 잘 먹었다.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도 나름 술안주였다. 아이들만 오면 캣타워에 들어가 목만 쭉 빼고 추르 얻어먹는 보리 나물이
곱창을 야식을 시켜서 둘러 앉아 먹을 때, 넷플릭스 화면 앞에 보리가 슬그머니 나와서 존재를 과시했다. 이제 동민이 수민이도 한 식구라는 것을 보리가 말해줬다. 결혼 앨범을 이제야 가져온다며 우리 것도 챙겨왔다. 그때 사진 보는 것도 한 몫
엄마가 손주사위에게 차려준 밥상이란다. 수민이가 툭툭 찍어 보냈다. 내가 냉장고에 넣어드린 갈비를 구웠고, 두부조림이랑 멸치조림은 우리 상에 없던 음식들이다. 포도랑 메론을 사가지고 간다더니 수민이가 설거지 하는 시이에 동민이가 착착 챙겨서 통에 넣어 드렸단다. 할머니는 이 이야기를 얼마나 하고 또 할까:) 난 엄마한테 가서 색칠공부 보여달라고 했는데, 수민이가 일기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기장을 보자고 했단다. 엄마는 수줍게 자랑스럽게 손주딸에게 보여줬겠지. 난 우리엄마 유산으로 나중에 읽을 것이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시청앞에 내려드릴 때 찍은 사진 속 엄마가 녹음에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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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