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otal : 2205, 1 / 111 pages
|
|
 |
 |
 |
|
| 이 름 |
르샤 |
 |
| Homepage |
http://lechat.pe.kr |
|
| 제 목 |
9월 넷째 주, 농사 일지 |
|
9월 넷째 주, 농사 일지
2024년 9월 23일(월)
아침 출근길 바람이 삽상하다. 일요일 아침부터 그랬다. 반팔을 입고 갔다가, 잘 때 이불을 끌어 당겼고, 새벽에 일어나서는 겨울에 입는 웃도리로 바꿔 입었다. 9월 넷째 주, 토일을 왕창리에서 보냈다. 땅콩이나 고구마 캘 때 되지 않았나? 땅콩은 잎이 누렇게 쓰러져야 캐는 거 아닌가? 농사 고수처럼 감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한사람의 이 년전 농사 일지를 보니 넷째주에 캤다고 해서 급하게 수확을 했다. 땅콩과 고구마 수확 이야기 포함, 2024년 9월 넷째 주 농사 일지를 사진 일기로 올려둔다.
1_토요일 아침 해먹고 갈 때, 비가 억수로 내렸다. 밤에 많이 왔다는데, 부산 경남 지역 폭우 뉴스를 보니 수도권은 상대적으로 약한 빗줄기였다. 왕창리 밭의 상태는? 밤새 내리고 아침에 퍼부은 비로 인해 청갓과 무우, 열무 심어놓은 고랑이 거의 물에 잠길 것 같았다. 점심 지나고 물이 빠지긴 했어도 대단하게 비가 왔다. 왕창리 들어가는 개울에 황톳물이 콸콸 쏟아졌다.
2_지난 주 묻어놓고 간 쪽파 씨앗에서 투창처럼 쪽파가 났다. 매년 쪽파를 일찍 심어서 이렇게 이쁘다이쁘다 해놓고 정작 김장하기 전에 다 녹아버렸다. 올해는 이 주는 늦게 심었고, 찬 바람이 났으니 이 쪽파로 김장을 할 수 있을까? 사람도 그렇지만, 모든 게 어릴 때가 참 예쁘다.
3_바깥에 심은 배추들은 달팽이가 먹고 배추벌레가 먹어서 흠집 투성이인데, 비닐하우스 안에 심은 배추 3개는 멀쩡했다. 바깥 이랑에 심고 남은 걸 여기에 심었는데, 문을 닫아놓아서 나비가 없었나? 토일 바깥공기 좀 쐬라고 문을 열어 놓았으니, 얘네들도 곧 풍파를 겪을 것이다. 나희덕의 시 ‘배추의 마음’을 보면,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란 구절이 있다. 이렇게 사는 게 정상이다.
4_비닐하우스 틀밭에는 절반은 파를 심고 끝에는 부추를 심고 가운데는 겨울 시금치 심을 땅으로 남겨 놓았다. 남들 대파밭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파 씨를 뿌려도 잘 안 나왔다. 파가 그렇게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한다고, 좀 자라거든 북돋아줘야 한다고도 했다. 모종을 살 때 파 모종을 반 판 사서 빽빽하게 심어 북돋아줄 틈도 없다:) 그래도 파숲을 이뤘으니, 기대를 한다.
1_그 비닐하우스 시멘트 틈 아래에 파란 것들이 올라온다. 대충 잡초로 퉁 치고 뽑아버리는데, 이건 너무 이쁘다. 수민이가 키운다는 보스톤 고사리 같기도 하고, 김초엽의 소설에 나오는 모스바나 같기도 하다.
2_고양이의 날이라고 원플러스원으로 산 사료 20킬로를 가져 갔다. 일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오는 것은 주말이라도 냥껏 먹으라는 마음도 한몫한다. 싸악 비어 있는 그릇에 두 그릇 가득 넣었더니 바로 코삐뚤이가 왔다. 양말이도 오고, 이번엔 이삼 주 못봤던 삼색이도 다녀갔다.
3_음식을 하기 전, 재료 다듬으며 멍 때리는 시간이 좋다. 마늘을 천천히 까기도 하고, 파숲에서 파를 한웅큼 가져와 샤악 겉옷을 벗기기도 한다. 감자는 감자칼로 쓱쓱 벗겨놓고 우리밭 마지막 양파는 마른 껍질을 벗기면 놀랍게도 탱탱한 물기 머금은 속살이 나온다.
4_가지가 많이 달려서 가지 구이를 해볼까, 소금을 뿌려 두었다. 너무 많이 뿌려서 좀 짰다.
1_가지구이는 망했다. 후라이팬에 올리브유 두르고 구웠어야 하는 것을, 삼겹살 굽는 거에 올렸더니 바짝 말라서 까슬까슬했다. 다음에는 후라이팬에 올리브유로 구울 것
2_퇴촌 하나로에서 산 닭 한 마리로 세 끼를 먹었다. 이건 첫 끼니로, 찜닭 소스를 넣긴 했는데 덜 졸여서 국물이 자작했다. 중요한 포인트는 먹기 직전에 파를 수북하게 넣어서 식감을 살리는 것이다.
3_점심이 지나자 비는 그쳤지만, 토요일 하루 종일 하늘은 꾸물꾸물했다. 부산에 싱크홀이 생겨 트럭이 빠졌다는 등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다. 이만하기 다행이다.
4_비가 오는 날은 노는 날이라고 했는데, 한 사람이 지붕 수리를 한다고 사다리에 올라갔다.
1_점심 먹고 나니 비가 그쳐서 물도 빠졌다. 해는 없죠, 조금 질퍽거리기는 해도 김 매기 좋은 날이라 둘 다 열일을 했다. 화단의 잡초도 뽑아야 하는데 그럴 여력은 없다. 우리집 화단에는 저절로 자란 애플민트가 있다. 지난 번에 건조해서 민트차를 우려 먹었는데, 다시 푸릇푸릇 잎을 냈다.
2_배추처럼 멀칭을 해서 서너 개 뿌린 무우 씨앗이 안 나와, 옆의 버리는 이랑에 줄뿌림을 했다. 그런데 그 모종들이 다 나왔다. 다음 주는 많이 솎아줘야 한다. 기다리면 나오는 게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배웠다.
3_그 옆의 배추도 꽤 자랐는데, 여기저기 뜯어 먹히면서 큰다. 저렇게 자라다가 어느 순간 결구를 하면 그렇게 배추가 기특할 수가 없다.
4_지지난 주에 모조리 다 딴 꽈리고추가 다시 많이 열렸다. 2세대는 주름이 별로 없다. 밀가루 묻혀서 쪄 먹거나, 멸치 넣고 조림을 해볼까, 다듬어서 집에 가져왔다.
1_농사 달력을 보다가 작년 이맘 때 표고목에 물을 하루 종일 줬다는 걸 알았다. 그 다음 주에 갔을 때 표고 꽃이 이쁘게 피었으니, 난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전 두 번에 나눠 표고목을 눕혀놓고 물을 듬뿍 줬다. 둥둥 두드려주는 것을 덜 했다.
2_올해는 맷돌호박이 풍년이다. 벌써 두 개나 가져갔는데 다시 두 개를 수확했다. 비가 너무 올 때 그냥 놔두면 물크러져 썪을 수 있어 두 개를 데크에서 숙성시키기로 했다. 마당에도 여전히 두세 개가 잘 자라고 있다. 분명 단호박, 마디호박, 늙은호박 세 종류를 심었는데 늙은호박만 잘 자란다. 늙은이 만세인가 ㅋㅋㅋ
3_한 송이만 남겨두고 머루포도도 다 땄다. 보기엔 이렇지만, 물에 씻어서 알알이 따놓으면 방금 딴 것처럼 향기롭고 달고 새콤하다. 올해 농사를 통틀어 2024년의 베스트원은 머루포도다. 꿀벌과 같이 나눠먹고 있다.
4_어느 사이에 메리골드도 한참 피었다. 우린 메리골드 함유 눈약을 먹고 있다.
1_수박과 참외 걷어낸 자투리 땅을 다시 갈아서 자잘하게 세 이랑을 만들었다. 지난 주에 삼단 콤보로 공심채, 김장무우, 알타리무, 청갓을 뿌렸는데 이번 주에 와서 보니 깨알같이 다 났다.
2_수박 참외 걷어내고, 오이는 끝났고, 이맘 때까지 수확하는 것은 여주다. 우리집 물이 점점 쌉싸름해지고 있다. 난 비가 갠 오후에 여기에 한참 있었다. 물을 좋아하는 생강을 물길에 심었더니 유난하게 잘 자라는 중이다. 앞뒤로 잡초를 뽑아주니 보기 좋다. 수민이 수혁이 어릴 때 물로 얼굴 싹 씻어줘 개운한 느낌처럼, 보기가 좋았다.
3_고구마 수확하기 전에 마지막 고구마순을 땄다. 참, 마늘까기 못지 않은 멍 때리기에는 고구마순 까기도 있다. 고구마순 사이에 연한 아스파라거스도 좀 넣고, 파와 고추는 무진장 많이 넣고 고구마순을 볶아 먹었다. 연두에 들기름에, 깨소금에 설탕 대신 매실청 조금.
4_토요일 밤이 내려오고 있다. 이런 하늘
토요일 왕창리 밤하늘에는 별이 빼곡했다. 그냥 아이폰으로 툭 찍었는데 몽골인 줄 알았다. 이른 새벽 하늘이다. 여러 컷을 찍고, 길게 그림자 드린 나도 찍었다.
아침 한다고 나온 하늘도 좋았다. 막 자고 일어나 눈꼽 그대로인 나도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장, 그러고보니 더운 여름에 잎이 까맣게 타버린 오갈피나무에도 가을 새순이 돋았다. 비가 맞고 루꼴라도 열심히 자라고 있다. 아직 먹을 때는 안 되는데, 다음 주에 오면 훌쩍 자랄 수도…
항상 일요일 아침은 일출이 찬란할 때 먹게 된다. 차리면서도 신경은 내내 바깥에 가 있다. 해가 뜨고 있을 때 얼른 나가서 한 장 더 찍을 생각이었다. 아침엔 가지전을 해봤고, 새로 난 고추는 된장에 찍어 먹었다. 한 사람 뒤의 그림자가 선명한 것은 해가 뜨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얼른 뛰어 나가서 찍었던 일요일 아침 일출 사진은 4사분면에 있다.
아침 햇볕은 모든 것을 빛나게 한다. 그 햇볕을 받아 반짝 빛나는 상추 대도 찍었다. 꽃을 보려고 혹은 씨를 받으려고 내버려둔 게 좀 있다. 어제 왔을 때는 물에 흥건했던 쪽파도 물이 빠지고 키는 좀더 자랐다. 보석 같은 머루포도는 디저트로 먹었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봐야 이렇게 잘 먹는데:)
1_2024년 9월 22일 일요일에는 땅콩과 고구마를 수확했다고 적어 놓았다. 예년에 비해 적게 심은 땅콩은 지금이 적기라는 것을 알았다. 작년에는 쭉정이가 많아서 먹을 게 없었는데, 이번에는 적어도 다 들어 있었다. 한 사람이 땅콩을 캐서 옆에 눕혀 놓으면 내가 알알이 땅콩을 땄다.
2_반 바구니 정도 나왔을까, 모종 10개를 심은 결과다. 하나에 얼마나 아롱이다롱이 열렸는지. 깨끗하게 씻어서 좀 말린 다음에 볶아 먹을 것이다.
3_올해는 고구마가 대풍이다. 뿌리 작물이라 둑을 두둑하게 올렸고, 자잘하게 먹는다고 좁게 심었는데도 뿌리를 굵게 내렸다. 한 사람이 삼지창으로 덩이 포함 힘을 써서 흙을 뒤집어주면 내가 파내는 2인 1조로 작업을 했는데,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4_아이들에게 보여준다고 한사람이 양손에 고구마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자식 새끼 보는 마음 ㅋㅋㅋ
고구마는 일이 주는 숙성해야 단 맛이 올라온다. 그래도 아쉬워 고구마를 구웠더니 약한 단맛이 났다. 보드럽고 촉촉한 맛. 우리가 고구마를 먹을 때 오랜만에 삼색이가 왔다. 얘는 우리 보고 집냥이처럼 뭐 달라고 냥냥거리는 아이인데, 얼른 냉장고에서 우리 먹으려고 가져간 훈제닭가슴살을 줬더니 순삭. 땅콩도 한 웅큼 껍질을 까서 후라이팬에 볶았다. 아직 물기가 있어서 이럴 때는 삶아서 먹어야 한다고, 경상도 남자에게 한소리 들었다. 서울 사람들은 볶은 땅콩만 먹는데?
왕창리에 가면 늘 전화하고, 못 보면 아쉬운 잠실 언니네가 있다. 길 건너 집이다. 서로 오는 때를 못 맞추고 하는 일이 많아 못보다가 나가는 길에 차 마시러 들렀다. 아이고, 데크 아래 쏘옥, 노랭이가 있었으니…. 우리가 고양이 사료 챙기는 것을 보시고 언제서부터 언니네도 사료와 물을 놔둔다고 하셨다. 이 집 하우스에서 출산을 한 모양이라고도 하셨는데, 유독 약한 노랭이 한 마리가 여길 떠나지 않는다고. 낯선 우리가 있는데도 호기심에 고개를 쏘옥 내밀다가, 용기내서 올라오고, 우리를 돌아보는 이 녀석:) 목에 흰 스카프를 두르고 흰 양말을 신었다.
일요일 점심 해먹고 나올 때 하늘, 오선지 악보가 있다. 날씨가 좋아서 둘이 한 장. 목이 탄다고 탄산수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서 ‘연세우유 우유크림 팝콘’을 샀으니, 몸에 좋은 음식을 먹었으니 이렇게 단짠도 먹어줘야 한다며 우린 차 안에서 한 봉지를 순삭했다.
1_왕창리에서 돌아오면 거둔 것들 정리한다고 부엌에서만 두 시간은 기본이다. 열무 솎은 것이랑 부추 끊어온 것을 듬뿍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여기엔 북해도산 다시마가루가 들어갔고, 굵은 멸치로 국물을 내서 감칠맛이 났다. 엄마가 챙겨준 재료로 오징어무침을 했다. 반찬이 너무 좋아서:) 술을 끊는다고 해놓고 사케 한 잔 한 것은 여기에 고백하고 넘어간다.
2,3,4_한사람이 설거지 하는 사이, 나는 정말 오랜만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뺨에 닿는 선득선득한 바람이 좋았다. 위례 광장로 지나, 멀리 잠실스카이가 보이는 밤 하늘. 하루 이틀 사이에 날씨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짧고도 멋진 굉장한 가을이 오고 있었다. 귀로는 유시민과 김어준의 대화를 들으며, 내내 감탄을 했다.
|
|
|
|
|
책과 나
생각의 처소, 이 공간에는 잡다하고 주의 산만한 제 흔적을
올립니다. 독서일기에서 시작하여, 영화 본 이야기, 음악 들은
얘기, 아이 키우는 해프닝(^^), 별 주제없는 수다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