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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르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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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echat.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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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가을, 아보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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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보하
2024년 9월 27일(금)
아침에 씻으면서 일없이 음악이나 영상을 재생한다.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시길, ‘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였는데, 그걸 못한다. 아이패드로 듣는 애플뮤직은 가사를 흘낏 보게 되어 좋다. 영상은 로션 바르며 보는데, 어젠 ‘2025 트렌드 코리아’ 영상이 올라왔다. 일 년에 한 번 보는 책이다. 흔들려야 청춘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김난도 교수도 얼굴에 손을 댄 듯, 그저 그런 보통의 얼굴로 나오셨다.
틀어놓는데 귀에 낯선 말이 ‘아보하'였다. 아로하는 알아도 아보하는? 듣다보니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이라고. 자기네들이 만든 ‘소확행'처럼 2025년에는 지지부진한 경제침체 속에서 ‘작고 민감한 것들'과 ‘현재지향적인 태도'가 키워드에 반영될 것이라고 예측한단다. 트렌트세터를 자처하며 소확행에 이어 아보하? 별다줄.
말 나온 김에, 2025 트렌트 키워드는 옴니보어, 아보하, 토핑경제, 페이스테크, 무해력, 그라데이션K, 물성매력, 기후감수성, 공진화 전략, 원포인트업을 꼽았다. 이걸 가지고 기자간담회까지 열었다니, 호명의 권력이 느껴졌다. 이런 것을 자꾸 써주면 안되는데:) 가을, 아보하 사진 몇 장을 올린다.
한 사람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출근할 날이 한 학기도 채 안 남았다. 그것도 못해주고 금요일 아침에는 나보다 먼저 운동을 하러 나갔으니, 1사분면처럼 오늘 아침은 학교에 와서 커피를 한 잔 했다. 일교시가 많아 허덕허덕 들어갔는데, 커피를 마시며 뒷편을 감상했다. 이것도 좋다. 이 커피잔은 사대부고와 역사를 함께 한다. 사대부고에 부임하던 2010년, 일학년 육반을 담임할 때 혜민이 엄마가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때는 김영란법이 없었나? 암튼 2010년부터 올해까지 15년 동안 매일 한 번은 내가 손에 쥔 커피잔이라는 이야기가 생겼다.
2학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아니 우리 도서관에 내려갈 새 없이 바빴다. 수업 및 평가계획, 국어과 연구, 교과서 선정, 원안 검토… 사람들은 교과주임이 업무가 없다지만 코웃음을 칠 말들이었다. 잠깐 그 업무가 끝이 보였으니, 금요일 2교시에는 잠깐 도서관에 내려가서 신간을 탐식했다. 딱 한 시간, 마음과 몸도 오롯하게 책과 풍경 앞에 있었다. 다섯 권을 고심 끝에 빌려왔고 거기서 신간 그림책은 두세 권 읽고 왔다. 그 중에 한 권이 ‘빨간 점’(김지영, 길벗어린이)이다. 단점을 이렇게 해석하다니:) 어느 날 발견한 빨간 점을 보다가 떠오른 이야기라는데, 그것만 보니 그게 동산만하게 커졌다고, 그런데 신경을 끄니 또 다들 몰라봤다고… 단점이란 그런 것이라는 말을 에둘러 빨간 점에 기대어 하고 있다. 나희덕의 산문에 나온 ‘가시'를 놓고 아이들과 내게도 있는 가시 이야기를 했다. 크고 작은 가시들이 나를 키웠다는 것처럼, 이 그림책은 단점만 들여다보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다. 새삼, 그렇구나, 생각했다.
목요일 퇴근 길에는 가든파이브를 들러 엄마 생신에 드릴 쉐타를 샀다. 수민이한테 묻는다고 한 장 찍은 사진, 수민이는 연한 분홍은 너무 하얘서 보랏빛이 났다고 했다. 동감. 캐시미어라서 까실하지 않고 포근하다. 간 김에 내 진바지도 한 장, 바지 수선하는 시간에 저녁을 먹는다고 정크푸드 롯데리아에 있었다. 오, 정크푸드의 맛:) 한사람이 내리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아보하의 2부를 계획하게 된다. 좋았다.
네 개 반 탱자 수업이 끝나고 남은 탱자를 가져왔다. 일킬로에서 이것만 남았으니 대부분의 아이들 손에 탱자를 쥐여줬다. 세 번째 가장 꾸러기반의 에피소드 하나 ㅋㅋㅋㅋ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큰일날 뻔한 이야기. 패들렛에 올린 우수작을 칭찬했고, 남은 시간은 시 30편 중에서 하나를 골라 자기식대로 읽고 분석하고 감상을 하며 몇 자 적은 다음에 내게 와서 시를 ‘이야기해주고' 도장과 사탕을 하나씩 받기로 했다. 이 수업에서는 아이들 고유성이 발휘된다. ‘어, 몇 번 시야? 기다려, 내 워크북도 펴보고. 무슨 시였어? 그래? 넌 어떤 구절이 좋았는데?’ 이렇게 리액션을 해주면 아이들은 유창하게 어눌하게 자기가 해석한 시를 내게 이야기해준다. 주객전도의 힘이 아이들을 집중하게 했으니, 이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학생이 와서 보건실에 다녀오겠다고, 탱자를 두 개나 먹었는데 속이 쓰리다고 했다. 엥?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건실에 보내고 또 아이들이랑 얘기하고 있는데 이번엔 남학생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탱자를 먹었는데 토할 것 같단다. 으이구… 아니, 이러다 ‘서울에 있는 모 고등학교에서 모 교사가 먹인 탱자 먹고 줄실신…’ 이런 뉴스가 나오는 거 아닌가 잠깐 시껍했다. 물론 두 아이들은 괜찮았다. 발가락에 붙인 밴드 얻는다고 들른 보건실에서 내가 탱자를 먹인 교사라고 실토했더니 쌤이 ㅋㅋㅋ 웃으시면서 괜찮아졌다고 하셨다. 아이들은 뭔가 조금만 이상해도 내려온다고.
나야말로 위의 사진처럼 남은 탱자를 반을 가르고 씨를 빼고 다시 반을 갈랐다. 이거 하는데 온천지가 끈적끈적해졌다. 그렇게 하고 하루 꼬박 말린 탱자로 차를 끓여 먹으려고 한다. 찾아보니 아토피 등 피부에 굉장히 좋다고 하니, 앞으로 굉장히 좋아지려고 한다:) 지금 내 앞에는 향긋한 탱자차가 있다. 꿀 한 수저 넣었더니 달큰하고 향긋하고 새곰한 차가 되었다.
연일 한 사람이 저녁 약속이 있고, 술에 얼큰하게 취해서 오면 늘 이런 자세를 한다. 금요일 아침에는 늙은호박죽을 다시 만들었다. 처음에는 건강에만 방점을 둬서 아무런 간을 안했는데, 이번엔 소금 한 꼬집 설탕 세 수저를 넣었더니 간이 딱 맞았다.
어제 잠깐 한 시간 놀았을 뿐인데 다시 업무 속으로. 9월 초에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을 놓친 게 중간고사 끝나자마자 하는 ‘우리말글 주간 행사' 준비였다. 아이들이 중간고사로 넋을 놓고 있는데 한글 관련 작품을 공모하다니 몇 편이나 들어올까 싶지만, 아이들마다 다 다르니까 그 중에 캐릭터나 일러스트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 하겠다 싶어서 휘리릭 준비했다. 작년 파일을 꺼내 쓱쓱 고치고, 기안하고, 리로에 올리고, 포스터는 재식쌤에게 고쳐달라고 부탁하고, 학년별로 전시와 체험할 아이템을 달라고 했다. 쌤들은 참, 훌륭하게도 굿아이디어를 주셔서 이제 월요일 가서 물품 기안만 하면 된다.
금요일 오교시 우리부서 행사인 인권교육 창체 시간에 일이학년 한 바퀴를 돌면서 4사분면에 있는 행사 내용을 붙였다. 병인쌤이 야물딱지게 준비한 인권교육의 내용은 관련 영화 보고 감상 생각해보기. ‘호루라기'라는 영화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많은 것을 말해주는 영화라 시험을 앞둔 창체시간에 많은 아이들이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특했다.
금요일 일이교시를 마치고 삼교시엔 정아쌤과 냥이들 본다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정아쌤에게 명퇴를 말씀드렸더니 쌤이 아이들과 함께 할 궁리도 하시고, 금요일엔 뒷곁에서 우리도 사진을 한 장씩 찍자고 해서 마음이 뭉클했다. 내 곁에 있는 이 멋진 쌤이 서정아쌤이다. 내 속마음을 다 털어 놓을 수 있는 분. 물론 내년에도 회비와 마음은 보낼 것이지만, 쌤이 너무 고군분투하지 않기를, 아이들과 냥이들과 함께 행복하길 바란다. 진흥원 뒷뜰에는 깜씨가 있다.
3사분면은 금요일 점심 먹고 한 바퀴 돌 때의 하늘, 강아지구름이다. 4사분면의 까망이는 부중 주차장에서 우릴 보고 냥! 외치던 녀석이다. 중성화가 되어 있고, 사람손을 탔는지 제법 뭐 달라고 의사 표현하는 까망이는 부중 뻔이와도 잘 지낸다고 정아쌤이 말씀하였다.
금요일 수업은 마쳤지만, 방과후에 우리학교 강당에서 ‘2024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학교 화합의 날’이 열렸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 난 우리말글주간 세부 계획을 짠다고 구글시트에 카톡방에 열일을 했다. 쌤들이 다시 한 번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짐을 싸놓고 체육관에 갔다. 이 행사를 위해 체육쌤들이 얼마나 애쓰셨을까. 그 마음 때문에 단체전에서 뛴다고 애를 썼더니 온 몸이 피곤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 2부 식당에서 한다는 밥도 먹지 않고 집으로 내달렸다. 그때 본 주황빛이 되려는 구름이다.
새로운 날, 아주 보통의 하루가 앞에 있다. 일찍 깨어서 좀 길게 있다. 엄마 생신날이기도 하다. 엄마는 당신 생일에 큰아들을 낳았다. 오늘 점심에 왕창리에서 엄마, 오빠, 승태 부부, 우리 둘 이렇게 밥을 먹기로 했다. 의정부에서 모이려고 했는데 동생이 시간을 조정했다고 해서 얼른 왕창리에서 보자고 했다. 지난주 수확해서 말리고 있는 고구마도 걸리고, 뒷산에 산밤이 빨갛게 떨어질 때니까. 엄마도 가을 바람 쐬시고 좋아하실 것이다. 점심은 동네 앞에서 먹는다고 했지만, 고기 사가서 구워 먹을까? 살살 마음이 달라지고 있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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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생각의 처소, 이 공간에는 잡다하고 주의 산만한 제 흔적을
올립니다. 독서일기에서 시작하여, 영화 본 이야기, 음악 들은
얘기, 아이 키우는 해프닝(^^), 별 주제없는 수다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