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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처소, 이 공간에는 잡다하고 주의 산만한 제 흔적을
올립니다. 독서일기에서 시작하여, 영화 본 이야기, 음악 들은
얘기, 아이 키우는 해프닝(^^), 별 주제없는 수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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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르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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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시월의 첫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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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첫날
2024년 10월 1일(화)
시월이 일찍 시작되었다. 구월의 마지막날에 초저녁에 잠이 들어 더 그렇다. 시월에는 중간고사가 가운데 있고 가을 행사도 많다. 낮에는 따갑지만 내일 모레부터 급작스럽게 추워진다고 해서 창문을 열었다. 아직은 서늘한 가을 공기가 좋다.
제철 달력을 갈아서 붙였다. 구월 보내고 시월을 받았다.
다달이 붙이라고 투명 스티커가 월별로 있는데, 시월을 붙이고 나니 이제 2024년은 덩그러니 두 달 밖에 안 남았다. 4/4분기 시작이다.
시월은 식탁 내 자리 바로 옆에 붙였다. 수확의 달답게 풍성하다. 벌써 땅콩과 고구마, 표고버섯과 사과랑 배는 먹었다.
시월의 첫날 세러머니로, 시월을 노래한 시들을 찾아봤다. 문인수, 문태준 모두 문씨이면서:) 농사 짓는 것이 틀림없는 시를 쓰셨다. 완전 공감한다.
시월 / 문인수
호박 눌러 앉았던
따 낸 자리
가을의 한복판이
움푹 꺼져 있다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다
시월에 /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해죽, 해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는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시를 옮겨 적으며 다시 읽었다. 지난 주 늙은호박을 따올 때, 움푹 꺼진 땅에는 바글바글 개미들이 바쁘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동안 호박이 노랗게 될때까지 자기들을 가려줬던 게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놀랐을 것이다. 문인수 시인은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다'라고 했고, 난 그 관찰과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개미들이 놀랐겠다'고 사족을 달았다. 문인수 시인은 현대문학감상 워크북의 11번 시 ‘쉬’로 들어갔다. 다 큰 고3 남학생이 읽으면서 많이 공감하는 시다. 난 해석을 들어주는 척하며, 아버지한테도 이 시 보여드리라고 말을 건다.
문태준 시인은 13번 시로, ‘나는 내가 좋다’를 수록했다. 문인수와 문태준 사이에는? 12번 문정희 시인이 있다:) ‘나는 내가 좋다’를 아이들이 읽을 때는 볍씨랑 못자리도 사전에서 찾아본다. ‘시월에'에도 농사꾼의 흔적이 담겼다. 초보농사꾼인 나도 매우 시든 토란잎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시에서 감동적인 건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 문득 알았다' 이 부분이다. 그때 빛나지 않았어도 온 몸이 구석구석 애썼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또 하나 공감 포인트는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이다. 으하하. 문태준 시인은 쓸쓸함을 떠올렸지만 오늘 나는 뜻밖에 주어진 선물 같은 ‘아무도 없음’이다. 아이들을 볼까 하다가 어그러져서 혼자, 한 사람이 비 온다는데 운동 약속이 있다고 나가서 혼자, (아 물론 내 곁엔 보리와 나물이가 있다) 혼자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스멀스멀 웃음이 나온다. 시월의 첫날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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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