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otal : 2198, 1 / 110 pages
|
|
 |
 |
 |
|
| 이 름 |
르샤 |
 |
| Homepage |
http://lechat.pe.kr |
|
| 제 목 |
김신지, 제철 행복 |
|
김신지, 제철 행복
2024년 9월 30일(월)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휘리릭 가늠을 하고 정말 좋은 책이나 또 읽고 싶은 책은 다시 살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스물 네 개의 계절로 접어들 때마다, 작가의 제안에 따라 혹은 절기를 살피는 예민한 감각으로 무장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싶다. 나한테 제철 달력을 선물한 수민이에게 건네줄 책이다. 김신지 작가의 책으로 나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었다.
「제철 행복」의 부제는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다. 맞춤한 부제다. 알맞은 시절을 산다는 건 계절의 변화를 촘촘히 느끼며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챙겨야 할 기쁨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는 일이라고 했다. 읽다가 따라하고 싶은 게 많이 생겼다. 가장 먼저는 이것. 7쪽에 있다. ‘새해가 되면 1월부터 12월까지 한 해가 한눈에 보이는 연력을 펼쳐두고 제철 행복을 적어두는 루틴이 생겼다’ 작년 씨네큐브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그 영화가 크게 인쇄된 연력을 선물로 받았다. 한 해의 행사와 기념일, 우리부서 학사일정까지 쭉 적어놓고 학교 책상 옆에 붙이며 한 해를 살고 있다. 그런데 2025년에는 24절기를 중심으로 제대로 연력을 써볼까? 한다.
한눈에 보는 24절기에 의하면, 가을은 8월 9월 10월,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까지다. 이런 책은 꼭 가을이나 겨울에 만나서 중간부터 읽다가 되짚어 봄 여름까지 읽게 된다. 처음에 이 책을 만났을 때는 허겁지겁 추분부터 읽었다. 그래서 내내 계수나무 타령을 한 것이다. 이제 입춘부터 시작해서 대한까지 한 바퀴 돌면서 책으로 24절기, 사계절을 만난다.
1부 봄, 봄비에 깨어나는 계절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춘(2월 4일 무렵) 봄이 일어서기 시작하는 한 해의 첫 번째 절기
꼬박꼬박 봄이 오듯이, 희망할 것_입춘엔 깨끗한 희망이 제철
내게 입절기는 늘 ‘배웅’과 ‘마중’의 시간이다. 입춘은 떠나는 겨울을 시간 들여 배웅하고, 다가오는 봄을 마중 나갈 때라고 일러준다. 입춘의 풍속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입춘첩 쓰기'다. 입춘대길 건양다경(봄이 오니 큰 행복이 찾아오고, 따스한 기운을 받아 기쁜 일이 많기를)에서부터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재앙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기를)까지. 이토록 다양한 입춘의 풍속 중 정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다. ‘적선공덕행’ 입춘 전날밤에 남 몰래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풍습을 말한다.
/ 나만의 입춘첩이라면, 올해의 소망을 구체적으로 써보는 것? 뒤늦게 올해 입춘첩을 생각해본다.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며 마무리하기’ 내년 입춘 무렵에는 무엇을 쓰게 될까, 그건 그때의 고민으로
우수(2월 19일 무렵) 눈이 녹아 비가 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때
언제나 봄이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_우수엔 이른 봄나물이 제철
봄의 시작을 호시노 미치오는 <긴 여행의 도중>에서 북극의 땅에 봄이 도착하며 쩍하는 해빙의 순간을 꼽았다. 입춘 다음에 오는 우수는 이름 그대로 눈이 녹아 비가 되어 내린다는 절기. 예로부터 봄비는 일비라고 했다. 부지런하게 농사일을 해야 하는 때. 뿌리를 뚫고 부드러운 흙을 밀어내며 기지개를 켤 힘을 내는 새싹에 주목하는 시간이다. 이맘 때의 땅의 봄을 느끼는 방법은? 이른 봄나물을 찾아 먹는 것이다. 쑥과 냉이, 마트에서는 섬초(비금도 시금치 혹은 청산도 봄동). 당분을 뿌리에 저장해서 혹은 견뎌내기에 달고 맛나다.
/ 왕창리에서 우수 무렵은 단연 봄나물 캐는 시절이다. 특히 우리 밭에는 겨우내 인삼처럼 옆으로 길게 뻗어간 황새냉이 뿌리가 실하다. 그걸 잘 씻어 툭툭 잘라 된장찌개에 넣으면 달큰하다. 막바지 돼지감자를 캐는 계절이기도 하고, 고수가 땅에 딱 붙어서 붉게 변장하고 겨울을 견디다가 연두빛 연한 새 잎을 밀어낸다.
경칩(3월 5일 무렵) 천둥소리에 놀라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는 봄
일어났어? 자연이 묻는 말에 답할 시간_경칩엔 봄맞이 기지개가 제철
다산 정약용이 만든 문예 모임 ‘죽란시사’와 자목련 모임. 경칩은 봄이 왔음을 알고 깨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기지개를 켜는 날, 나의 봄 기지개는 내내 닫아두었던 창문을 활짝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 봄맞이 물청소를 하는 날로, 생동하는 경칩 규약을 일단 적어둔다.
춘분(3월 20일 무렵)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봄날
덤불 속에, 가지 끝에 숨겨둔 봄의 쪽지_춘분엔 ‘봄을찾기' 산책이 제철
춘분 무렵은 연중 산책 생활이 가장 바빠지는 시기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고, 일주일에 7일 정도? 이맘 때는 버드나무 연둣빛꽃인 새순. 이맘때 앞다투어 피는 꽃 구별법으로 매화와 벚꽃, 산수유나무와 생강꽃, 영춘화와 개나리, 진달래와 철쭉이 있다.
/ 이맘때 그러니까 삼월 삼주차에는 귀룽나무가 천지에 푸르고, 서예붓처럼 봉긋한 진달래꽃이 점점 고운 눈썹을 자랑하면서 피는 때. 생강나무 꽃과 잎 다 이쁘다. 겨우내 단맛을 키운 시금치가 많아 휘뚜르마뚜르 시금치 프라타타를 만들어먹기도 한다.
청명(4월 5일 무렵) 산에 들에 꽃이 피어나는 맑고 밝은 봄날
지금을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_청명엔 꽃달임이 제철
벚꽃을 창가에 두고 살면서 겪은 이야기. 청명에는 부지깽이만 꽂아도 싹이 난다는 속담처럼 이 무렵은 산천의 모든 것이 왕성한 생명력으로 빛나는 계절이다. 음력 삼월 삼일 삼짇날, 파랗게 돋은 새 풀을 밟으며 산책한다는 뜻의 ‘답청’, 경치 좋은 곳에 여럿이 모여 꽃을 따다 음식을 해 먹는 ‘꽃달임’을 했다.
/ 봄이 어디쯤 오나 지켜볼 내 나무라면 학교엔 귀룽나무, 왕창리엔 매화와 산벚나무, 학교 가는 길의 수양버들과 위례 정원의 팽나무. 이 중에서 가장 늦게 새잎을 다는 것은 팽나무다. ‘화전가’를 가르친다면 작정하고 청명의 의식을 얘기해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아쉬운 대로:) 내년 청명에는 꼭 꽃달임을 해보겠다.
곡우(4월 20일 무렵) 곡식을 기르는 봄비가 내리는 때
봄 산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_곡우엔 봄 산과 돌미나리전이 제철
3월 즈음 부산이나 남해로 ‘벚꽃 마중’을 나갔다가 4월 중순 이후에는 북쪽으로 ‘벚꽃 배웅’을 떠나는 것. 어디로 떠나든 벚꽃을 배웅하러 나서는 건 곡우 즈음이다. 봄비가 내려 모든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 곡우의 비는 봄 가뭄을 해결해주어 곡식을 기를 수 있게 해주는 귀한 비다. 벚꽃 배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돌미나리집에 가서 미나리전에 막걸리를 마시는 계절 리추얼이 생긴다.
/ 4월 중순 왕창리는 두릅전, 때늦은 진달래, 떨어지고 있는 도화, 만발한 민들레꽃 정도다. 가시오갈피 새순도 있고 봄에 새로 난 표고 볶음도 있다. 난 돌미나리 대신 가시오갈피나 두릅전을 해먹는데, 올해부터 수돗가에 돌미나리도 심었다. 그러나 4월 3주차는 뭐니뭐니해도! 봄날 먼 산을 바라보는 맛이 있다.
2부 여름, 햇볕이 자라나는 계절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하 (5월 5일 무렵) 싱그러운 여름에 들어서는 출발선
5월에 내리는 이토록 하얀 눈_입하엔 ‘입하얀꽃'이 제철
아이슬란드어에는 날씨가 화창하다는 이유만으로 예정에 없이 주어지는 휴가를 뜻하는 ‘솔라르프리'라는 단어가 있다. 입하는 늘 ‘이팝'으로 온다. 새하얀 눈꽃치즈를 수북이 뿌려둔 것 같은 이팝나무는 이맘때 어딜 가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입하부터 6월까지 하얀색 꽃들이 지천에서 피어나 ‘입하얀꽃’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다. 조팝, 이팝, 쥐똥, 때죽, 층층, 아카시, 팥배, 덜꿩, 마가목, 함박꽃, 쪽동백나무과 찔레꽃.
/ 나도 이맘때 흰꽃나무들의 시절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작가님은 ‘입하얀꽃’라고 호명하시다니, 앞으로 나도 좀 가져다 쓸 생각이다. 사대부고에서는 교생 실습의 계절이라 혼을 쏙 빼놓고 살아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했던 오월이기도 하다.
소만 (5월 20일 무렵) 작은 것들이 점점 자라서 대지에 가득 차는 때
먼저 건네면 무조건 좋은 것_소만엔 싱거운 안부가 제철
한 해중 농사일로 가장 바쁠 때. 고사리 꺾고 버찌 줍고 작약이 피는 때. 부모님에게 싱거운 안부 보낼 때이기도. 안 하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땐 작게 해 본다. 그중 가장 쉬운 안부의 규칙은 ‘이름으로 된 간판을 발견하면 연락하기’
/ 사대부고 교사에겐 여전히 바쁜 오월이기도 하다. 왕창리 갈 때 늘 만호 카페를 지난다. 지날 때마다 저걸 찍어 교감쌤에게 보내 말아 생각을 한다. 언젠가 보내겠지. 5월은 효도가 제철이기도 하다.
망종 (6월 5일 무렵) 까끄라기 곡식인 보리를 베고 모를 심는 시기
망종엔 무얼 하든 바깥이 제철
하느님이 보우하사 습도 낮고 모기 없는 망종 무렵엔 무얼 해야 할까? 부지런히 바깥을 즐겨두면 된다. 6월엔 무주산골영화제.
/ 난 논농사는 안하니, 완두콩과 양파 마늘 수확하는 유월 초순 망종 무렵이다. 양배추에 벌레가 드글드글하고, 블루베리가 익어가는 시간이기도 하고. 왕창리에 가면 데크에서 밥 먹고 밭에서 일하고 데크에서 종일, 나도 바깥에서 보낸다.
하지 (6월 21일 무렵) 여름에 이르러 낮이 가장 길어지는 날
해가 지지 않고 우리는 지치지 않고_하지엔 햇감자에 맥주가 제철
/ 우리도 큰 비 오기 전인 6월 4주차에 감자를 캔다. 대체로 비슷하다. 포실한 감자는 처음 수확할 때 삶아 먹고, 대체로 잊어버리고 있다가 차례차례 부엌에 등장한다. 어릴 때 엄마 반찬을 생각하며 채친 감자를 볶아 먹거나, 얄팍하게 썰어 감자도우로 피자처럼 먹은 적도 있다. 감자칼로 껍질을 벗기면 보드러운 속살을 보여준다. 이맘 때 나는 감자와 오이와 양파를 잘게 다져서 마요네즈에 버무려 샌드위치를 잘 만든다.
소서 (7월 7일 무렵) 작은 더위 속에 장마가 찾아오는 때
비가 오면 달려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_소서엔 ‘비멍’이 제철
능소화가 보일 무렵이 소서. 이제 나는 비 내리는 날에는 희우루를 떠올린다.
/ 6월말 7월초 장마가 한 바탕 몰려오고 무사히 살아남은 것들이 몸을 키운다. 수박, 오이, 참외, 고추, 가지…. 반찬이 넘쳐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작가님은 기왓장 아래 내린 비로 파인 웅덩이 이야기를 했는데, 난 왕창리에서 머리 위를 때리는 빗소리를 좋아한다. 양철지붕에 내리는 빗소리처럼 운치가 있다. 장마도 좋아질 만큼.
대서 (7월 22일 무렵) 큰 더위와 열대야가 이어지는 여름날
대서엔 휴식의 자세가 제철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고바야시 잇사) 하이쿠를 빌어 불볕더위와 습도까지도 여름이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한겨울의 혹한 속에서 어쩌면 그리워할 순간. 주머니를 뒤집었을 때 나오는 모래 알갱이나 천 가방에 희미하게 밴 바다 냄새처럼. 여름이 이토록 더운 것은 우리에게 쉬어갈 명분을 만들어주려고. 무리하지 않는 법과 휴식의 자세를 가르쳐주려고.
/ 한 여름 쨍한 날씨를 기억한다. 푹 쉬라고, 무리하지 말라고, 잘 쉬는 게 제철이라는 말을 기억하겠다. 대서 무렵 우리 화단에는 나리꽃이 여름을 알려준다. 바질 잎을 잘게 썰고 양파도 다지고 편으로 썬 토마토에 올리브유와 달콤새콤 꿀과 레몬즙을 넣어 차게 해서 만든 마리네이드가 이때의 음식이다.
3부 가을, 이슬에 여물어가는 계절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추 (8월 7일 무렵)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는 때
어느 날, 새끼 제비를 도왔더니 생긴 일_입추에 구름 감상과 제비 관찰이 제철
구름과 노을에 경탄하는 때. 대서 뒤에 오는 입추는 벼 이삭이 여물어가는 들판 위로 제비가 뒤집힌 포물선을 그리며 나는 계절이라지만, 일년 중 가장 더운 날이 이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입추 매직. 밤 공기.
/ 기후변화로 인해 덥고 아주 덥고 더 더운 입추를 보내고 있다. 덥다고는 하지만 가을 준비도 하는 때다. 감자와 양파 마늘을 심었던 고랑을 김장배추와 무 심을 고랑으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범부채꽃도 피고, 왕창리의 구름멍은 끝내준다.
처서 (8월 22일 무렵) 더위가 멈추며 가을이 깊어지는 때
눅눅해진 마음을 햇볕에 잘 말리고서_처서엔 포쇄가 제철
밤산책도 기꺼이 하게 됐다. 열대야가 한창 이어질 땐 며칠간 에어컨을 켜고 잤지만 이젠 창문을 열어두고 잘 수 있을 만큼 밤공기가 식었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 이맘때의 풍속은 ‘호미 씻이'와 ‘포쇄’ 볕에 쬘 포에 볕에 말릴 쇄. 장마가 있는 여름을 지나는 동안 눅눅해진 책이나 옷을 모두 꺼내어 햇볕에 쬐고 바람에 말리는 일을 뜻한다.
/ 처서 무렵의 제철 숙제 중 하나가 마음에 들어 적어 놓는다. ‘여름내 눅눅해진 나를 데리고 나가 햇볕과 바람에 말리기’ 밤산책을 자주 하라는 뜻으로 받았다. 올해는 처서매직이 어디 있냐는 말을 하긴 했지만, 끝내 가을은 올 것이다.
백로 (9월 7일 무렵) 밤 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흰 이슬이 맺히는 시기
도토리 6형제를 찾아 숲으로_백로엔 도토리 공부가 제철
제비는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가고 북쪽에 사는 기러기가 찾아오는 계절. 백로부터 추석까지 열흘 남짓한 옛사람들은 가을볕에 포도가 익어가는 시기라는 뜻에서 포도순절이라 부르기도. 여름의 색이 서서히 빠져나간 자리에 어떤 색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는지 지켜본다. 다람쥐나 청설모들이 꼼꼼하게 발라먹고 버린 잣송이나 솔방울도 눈에 띈다고(새우튀김 찾기). 초여름에 입하얀꽃의 이름을 알려주는 게 산책의 즐거움이었다면, 가을엔 도토리 구별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모자상점에는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가 있다.
/ 왕창리 뒷산에 도토리나무들이 있다. 첫해 엄마는 도토리가 많이 나는 흰동갈 나무라고 했는데 아마 졸참나무인 듯하다. 첫해에 주운 도토리로 엄마는 묵가루를 쑤라고 주셨다. 이제 도토리는 안 줍는다. 줍고 난 후의 일이 너무 많아서 엄마한테 가루를 얻어 먹는 것으로.
추분 (9월 22일 무렵)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가을날
이런 날엔 우리 어디로든 가자_추분엔 계수나무 향기가 제철
이런 날 집에만 있는 건 오늘 이용 기한이 만료되는 날씨 쿠폰을 안 쓰는 것과도 같다. 캠핑 재채기. 오늘의 할일은? 가을 날씨 즐기기. 풀벌레 소리, 가을의 벚꽃인 코스모스, 산책에서 만난 달달한 계수나무 향내.
/ 작가님 책을 읽기 시작한 때가 추분이라 이 부분을 먼저 읽었고 계수나무 이야기를 만나 반갑고 아쉬웠다. (나만 알고 싶은 이야기였으니까:) 밤산책의 서늘한 공기에 올 여름이 드디어 지나갔구나 실감을 했다. 방금도 여름 이후 오랜만에 남한산성에 다녀왔다. 초가을 분위기를 느꼈다.
한로 (10월 8일 무렵) 찬 이슬이 맺히며 열매가 익는 시기
계절이라는 가장 가까운 행복_한로엔 오래된 산책이 제철
사과, 배, 대추… 영근 과일을 따고 곡식을 거두어들이느라 분주한 지금은 한로. 밤 기온이 점점 떨어지며 이슬이 서리로 변하기 직전, 찬 이슬이 맺히는 때다. 무화과, 고창의 꽃무릇이 제철. 이 무렵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창덕궁 후원에 가는 일이다.
/ 아직 본격적인 단풍이 들지는 않았지만, 중간고사가 낀 이맘 때 난 꼭 한 번은 혼자 시내 고궁을 갔다. 담쟁이 단풍에서부터 조금씩 가을이 물드는 것을 봤다. 작가에게 창덕궁 후원이 있다면 내겐 부여중 시절에는 창경궁이 있었고, 지금은 한가을에 가는 올림픽공원이 있다. 거기 가서 오래된 산책을 한다.
상강 (10월 23일 무렵)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짙어지는 때
기차를 타고 가을의 마지막 역에 도착하는 일_상강엔 마지막 단풍놀이가 제철
낮에는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밤기운이 뚝 떨어지면 공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땅이나 풀잎에 엉겨붙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정원가의 열두 달>을 쓴 카렐 차페크에 의하면 가을은 다시 새잎이 싹트는 철이기도 하다. 아래를 걸으며 단풍 산책을 권한다.
/ 양파와 마늘을 심고, 햇무는 몇 개 뽑아서 채쳐서 무나물을 해먹는 때. 왕창리 뒷산에도 제법 단풍이 들었고, 멀리 앞산에는 노란 단풍이 아름다운 때다. 아버지가 문방구 할아버지로 살아계시고 수민이랑 수혁이가 서초등학교 다닐 때는 은행나무 잎을 주워 코팅을 해주셨다. 이맘 때 나는 감나무 단풍에 눈이 간다.
4부 겨울, 눈을 덮고 잠드는 계절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입동(11월 7일 무렵) 겨울에 들어서며 겨울나기 채비를 하는 때
긴 겨울을 함께 건널 준비를 하자_입동엔 까치밥 닮은 선물이 제철
소설(11월 22일 무렵) 첫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시기
겨울 속에 어떤 즐거움을 심어둘까_소설엔 별게 다 좋은 마음이 제철
대설(12월 7일 무렵) 큰눈이 내려 보리를 포근하게 덮어주는 겨울날
눈은 보리의 이불 우리의 오랜 기쁨_대설엔 눈사람 순례가 제철
동지(12월 21일 무렵) 한겨울에 이르러 밤이 가장 길어지는 날
긴긴밤 돌아보면 좋은 순간도 많았다고_동지엔 김칫국 토크가 제철
소한(1월 5일 무렵) 작은 추위 속 겨울 풍경이 선명해지는 때
겨울이 문을 열어 보여주는 풍경들_소한엔 탐조와 겨울눈 관찰이 제철
대한(1월 20일 무렵) 큰 추위가 찾아오는 한 해의 마지막 절기
내가 나여서 살 수 있는 삶이 있다면_대한엔 겨울 아지트가 제철
/ 추분에 <제철 행복>을 읽고, 입춘에서부터 상강까지 왔다. 이제 막 시월이 시작되었으나 상강은 시월 사주차. 24절기를 알았으니 남은 상강과 동절기는 좀더 새롭게 보일까. 다정한 책을 읽었다. 나도 농사일기가 되었든 연력이 되었든 꾸준하게 눈에 보이게 절기와 농사력을 적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
|
|
|
책과 나
생각의 처소, 이 공간에는 잡다하고 주의 산만한 제 흔적을
올립니다. 독서일기에서 시작하여, 영화 본 이야기, 음악 들은
얘기, 아이 키우는 해프닝(^^), 별 주제없는 수다까지. 
